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고 '사회적 기업'이 선진적인 기업모델로 각광을 받고 있다. 우리 대기업들도 그 흐름에 동참하겠다고 애를 쓴다. 기업은 원래 이윤을 추구하는 조직체이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의 얼굴을 한 기업,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선한 기업이란 가능한 것일까.
법적ㆍ도덕적 책임이 앞서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데 말리거나 훼방 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기업과 사회적 책임 사이에 어쩔 수 없는 모순이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창업자가 수익을 희생하면서까지 제품과 고객에 초점을 맞추다 결국 이사회에서 쫓겨나고 만다는 '설립자 신드롬'이 그 점을 잘 말해준다.
1916년 닷지 대 포드(Dodge v. Ford) 사건에서 T모델 자동차의 가격을 인하하여 회사와 사회 전체에 이익을 주려던 헨리 포드의 결정은 닷지 형제가 내세운 주주이익 최대화 원칙에 의해 좌절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캐나다 출신의 법학자 조엘 바칸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그것이 진심에서 우러난 것이라면 법에 어긋난다"고 결론지었던 것이다.
저서 <탐욕주식회사(greed inc.)> 에서 웨이드 로우랜드(Wade Rowland)는 기업은 수익 창출을 위해 인류가 고안해 낸 인공적 도구지만 오히려 그것을 만든 인간과 사회를 지배하기에 이르렀다고 갈파한다. 기업의 문제는 그것이 다면적인 인간 심리 가운데 오직 한 측면, 곧 탐욕만을 모방하도록 고안되었다는 점이다. 탐욕주식회사(greed>
제약회사들은 불리한 임상 테스트 결과를 숨기기 일쑤이고, 정유회사는 자연환경을 파괴하며, 의류회사들은 어린이 노동을 착취한다. 자동차 회사들은 설계상 결함을 알면서도 비용편익 계산에 따라 리콜을 거부하며 미디어기업은 청소년에 유해한 폭력적 내용을 쏟아내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수익 창출이라는 오직 한 가지 목적만을 위해서 강탈과 지배, 반사회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을 거리낌 없이 자행하는 현대 비즈니스 기업과 사회적 책임은 잘 조화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나 시민사회는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다할 것을 촉구한다. 경제가 위기인데 막대한 자금을 가지고도 투자에 나서지 않는다며 윽박지르거나, 사회투자 확대와 사회복지단체나 시민단체 등에 대한 기부를 요구하면서 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내세운다. 그러나 완벽하게 이기적이고 더욱이 그 욕심에 도덕적, 문화적 제한이 없는 기업에 사회적 책임보다 더 중요한 법적, 도덕적 책임이 있다는 사실은 곧잘 망각되거나 경시되는 경향이 있다.
그 책임을 사회적 책임과 혼동하거나 서로 교환 가능한 것으로 취급하는 풍조도 사실상 만연되어 있다. 종종 대기업 총수들이 형사처벌 감면을 대가로 재산의 사회헌납을 공약하는 일, 법원이 추상같이 법리를 따지면서도 국민경제에 대한 영향이나 기업 발전에의 기여 등을 내세워 작량감경을 하거나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것은 바로 그 점을 보여준다.
부패와 비리, 도덕적 해이, 복합 기능부전 등으로 부도위기에 몰린 대기업은 공적 자금을 쏟아 부어서라도 살려야 한다는 정부의 책임감은 이른바 '대마불사론'을 낳았다. 바로 얼마 전 평택에서 농성 근로자들이 정부에 공적자금 투입을 요구하게 만든, 많은 사람들이 잘 납득할 수 없었던 현상의 정치경제적 배경이 되었다.
시장 살리는 강력한 제재
'탐욕 주식회사'도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이 만든 도구가 그것을 만든 인간을 지배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아니 조금이라도 그 폐단이 축소되도록 기업이 도덕적, 법적 책임을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로우랜드가 주장하듯 기업을 군대처럼 다룰 것까지야 없지만, 시장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기업의 부도덕하고 반사회적인 행태에 대해서는 예측가능하고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