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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하루키, 신포니에타, 해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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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하루키, 신포니에타, 해운대

입력
2009.09.01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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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한국 평론가들의 반응은 크게 엇갈린다. 그의 소설이 고급문학과는 거리가 먼, 오히려 그 사멸을 재촉하는 허드레 대중문학이라고 폄하하는 쪽이 있다.

한쪽에서는 하루키의 소설이 한국 독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단계를 넘어 이미 작가들의 의식 깊숙한 곳까지도 내면화됐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느 쪽이든 하루키가 한국에서도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그가 7년 만에 발표한 장편소설 <1Q84>가 엊그제 번역돼 나오자 각 신문들은 하나같이 대서특필했다.

일본에서 초판으로 무려 68만부를 찍고 출간 열흘 만에 100만부가 넘게 팔렸다 해서 화제가 됐지만, 한국에서도 번역한 출판사와 계약 단계에서부터 선인세가 10억원을 넘느니 하는 것으로 말도 많았다.

왜 하루키인가. 아니 문학이 죽었다는 시대에 왜 하루키는 읽히는가, 하는 것으로 질문을 좁혀야 할 것 같다(그의 소설이 소위 고급문학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사실상 논외로 둬야 한다.

세상에는 그의 소설보다 더 많이 팔리는 책들도 있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글이라는 모호한 기준만 들이대도 그의 소설을 그런 책들과 같이 비교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첫번째 답은 <1Q84>의 첫 문장을 읽자마자 나온다. 그리고 아마 그것이 한국, 아니 일본과 세계의 독자들이 그의 소설을 찾는 첫번째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택시 라디오에서는 FM방송의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곡은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 . 정체에 말려든 택시 안에서 듣기에 어울리는 음악이랄 수는 없었다.’ 하루키의 독자라면 뒷부분으로 넘어가기도 전에 야나체크와 신포니에타가 궁금해지고, 당장 음반가게로 달려가고 싶어진다.

일본에서는 2000년에 2,000장을 찍고 말았던 신포니에타 CD가 하루키의 소설 출간 후 주문이 쇄도해 3주 동안 1만2,000장을 다시 제작했다고 한다.

하루키의 첫번째 비밀은 바로 문화 코드의 창조와 전파라는 데 있다. 그의 소설에 반드시 등장하는 클래식과 재즈·팝 음악, 문학과 미술 등 예술작품의 인용은 그대로 독자들에게는 코드가 된다. 독자들은 하루키를 읽으며 그 코드를 흡수하고 일종의 ‘교양이 주는 행복’을 느낀다.

1,000만 관객을 넘긴 영화 ‘해운대’의 윤제균 감독은 자신의 영화관을 “두 시간 동안 관객을 행복하게 만드는 영화”라고 했다. 분명한 철학이다. 그의 말대로 영화의 잔상은 두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질지 모르지만, 책으로 흡수한 행복한 문화 코드는 아주 오래 독자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하루키는 그걸 알고 있는 것이다.

두번째 답도 그의 소설 속에 있다. “나는 말이지, 특히 소설에 관해서는 내가 다 읽어낼 수 없는 것을 무엇보다 높이 평가해. 내가 죄다 알아버리는 그런 것에는 도대체 흥미가 없어. 당연하지. 지극히 단순한 일이야.”(<1Q84>의 등장인물 고마쓰의 말)

하루키는 이 지극히 단순한 비밀을 누구보다 잘 써내는 작가다. 그의 소설이 옴진리교 사건 같은 당대의 현실을 다루면서도 늘 ‘여기가 아닌 세계’를 그리는 이유다. 그리고 독자들도 실은 ‘내가 다 읽어낼 수 없는 것’을 책에서 읽고 싶어한다.

하루키 이야기를 한 건 80년대를 지나고서는 아주 폭삭 늙어버리고 만 듯한, 그리고 21세기 들어서는 고만고만한 읽을거리로 명맥만 이어가며 독자들을 떠나가게 만드는 듯한 한국문학이 안타까워서다. 문학이, 책이 살아남을 것인가 하는 우울한 질문에 하루키는 하나의 답을 던지고 있다.

하종호 문화부장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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