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공직자나 정치인 등의 처신을 문제 삼을 때 단골로 거론돼온 것이 부적절한 외유나 골프다. 한동안 조용하다 싶더니 또 같은 문제가 터져 나왔다. 물론 지금까지 논란이 됐던 사례들 중에는 너무 경직된 기준이 적용된 경우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경제규모나 국제적 위상 등을 감안할 때 지나친 엄숙주의에서 벗어나 이런 사안들을 어느 정도는 유연하게 볼 필요가 있다는 일각의 지적에도 공감하는 바다.
그러나 신종플루로 온 나라에 비상이 걸린 마당에 불거진 이번 경기지역 보건소장들의 집단 해외연수는 아무리 너그러운 기준으로 생각해도 이해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매일 감염자들이 급증하고, 줄줄이 개학이 연기돼 각급학교마다 학사차질이 빚어지고 있으며, 치료약과 백신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 제약사 병ㆍ의원들이 전쟁을 벌이다시피 하고 있다. 다중이용시설을 운용하는 민간에서도 저마다 자구책을 짜내 국민들 사이에 확산되는 공포감을 누그러뜨리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런 판국에 일선방역을 책임진 이들이 어떻게 외유를 떠날 생각을 했는지 모를 일이다. 이는 한창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최전선 지휘관들이 교전지역을 집단 이탈한 상황과 다를 게 없다. '모자보건 등을 위한 해외교류'라는 명분도 한가하기 이를 데 없는 데다,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므로 연기하거나 국내연수로 전환하라'는 상급기관의 당부마저 묵살했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그 배짱과 무책임에 할 말을 잃게 된다.
경우는 다르지만 전국에 조기가 내걸린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일에 골프를 즐긴 경남 사천시장의 처신도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평소대로 운동했을 뿐"이라는 해명에서는 공직자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상황인식 능력이나 판단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국민들은 하나같이 안팎의 난국을 헤쳐가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는데, 앞장서고 봉사해야 할 공직자들만 오히려 한가한 다른 세상을 즐기고 있다는 인상을 줄까 두렵다. 공직을 맡은 이들의 대오각성을 거듭 촉구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