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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무궁무궁 무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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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무궁무궁 무궁화

입력
2009.08.3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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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가 한창이다. 아니 무궁화 꽃이 아름답게 피기 시작한 지는 벌서 한참을 지나 그 끝에 다가가고 있는데 이제야 눈에 그 모습이 제대로 들어왔다고 해야 옳다. 그리고 나무와 풀을 공부한다고, 이들이 곱고 의미 있다고 이야기하며 살아 온 지도 한참이 되었는데 이제야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나라꽃 무궁화가 아름답다고 제대로 생각하게 되었다. 부끄러운 고백이다.

새삼 절절히 느낀 나라꽃

무궁화를 올해 절절하게 느끼게 된 것은 마음이 아닌 머리에서 시작되었다. 내가 속한 산림청에서 나라꽃 무궁화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일을 대대적으로 시작한 것이 계기이다. 내가 하는 일의 하나가 식물들을 정확하게 구분하고 바르게 이름 붙이고 이를 국가적으로 증거하는 표본을 만들어 보관하는 일인데, 문득 나라꽃 무궁화에 대해 품종 별로 그 작업을 먼저 해야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무궁화를 품종 별로 잘 모아놓은 곳에 가서 가지를 하나씩 거두어 영구히 보전할 표본을 만들기 위해 1백 여 가지에 이르는 품종을 하나하나 시간을 두고 만났다. 그렇게 하루 종일 무궁화 속에서 보낸 다음, 참으로 그 품종 하나하나가 많은 노력의 산물로 충분히 가치 있고 아름답게 태어났음을 알았다. 그리고 우리가 나라꽃 무궁화와 아직도 거리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무궁화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여전히 다가가지 않는 우리의 문제라는 사실도.

먼저, 무궁화는 옛 이름이 목근(木槿) 또는 순화(舜花)이던 것이 무궁화(無窮花)가 되었다.꽃을 오래오래 볼 수 있어 그렇다고 해석을 붙이곤 한다. 여름이다 싶으면 하나 둘 피기 시작하여 이때가 한창이며 가을까지 이어질 듯 하니 그 이름에 과히 부끄럽지 않다. 그렇다면 무궁화 꽃 한 송이는 한번 꽃을 피우면 얼마나 오래 갈까. 재미있게도 꽃 한 송이의 수명은 하루이다. 아침에 꽃을 피워 저녁에는 꽃잎을 말아 닫고는 져버리고, 다음날 아침이 오면 다른 꽃송이가 피어지기를 수없이 반복하는 것이다. 피고지고 또 피어 무궁화인 것이다.

무궁화는 수많은 꽃 중에서 나라꽃이 되는 영예를 안았지만 아직 마음으로 무궁화에 거리감을 두는 이가 적지 않다. 무궁화는 지저분하고 심지어는 잘못 만지면 눈병을 옮는다는 잘못된 통념 탓이다. 일제 치하에서 무궁화가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되어가자 일제는 무궁화 꽃가루가 살에 닿으면 부스럼이 나는 '부스럼 꽃'이라는 이야기를 퍼트렸다. 무궁화를 변소 울타리나 모퉁이에 심는 천대 받는 나무로 전락시킨 것도 일제다. 아직까지 이런 잘못된 통념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또 하나의 논란은 우리나라에 자생지가 없다는 점이다. 현재 무궁화를 자생지에서 찾을 수 있는 곳은 중국과 인도 일부 지역이라고 한다. 그러나 문헌상으로 중국의 아주 오래된 고전인 <산해경> 에 '북방에 있는 군자의 나라에 무궁화(槿花)가 많아 아침에 피어 저녁에 진다'고 적혀있는 것을 시작으로, 신라를 근화향(槿花鄕), 즉 무궁화의 고장이라고 표현한 기록 등으로 이어졌으니 이 땅에 무궁화가 아주 옛적부터 자랐음을 뒷받침하고도 남는다.

나라와 이웃사랑 배울 때

무궁화는 숱한 고난 속에서도 일어나 이어져 온 우리 민족처럼 피고지고 또 피어 정신이 된 나라꽃이 아니겠는가. 어떻게 하면 나라꽃 무궁화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사랑하며 아름답게 가꾸어 갈 수 있을까. 개개인의 행복이 참으로 중요한 일이지만,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며 이웃과 더불어 함께 가는 일이 진정한 가치라는 것을 좀 더 열심히 배워야 할 때인 것 같다. 그래야 무궁화처럼 무궁무궁해질 수 있지 않겠는가. 무궁화를 아끼고 가꾸는 마음은 또 하나의 나라사랑 구심점이 될 수 있다. 그냥 무궁화가 아니라 나라꽃 무궁화가 아닌가.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표본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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