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내게 맞수 따윈 없었다라고 큰소리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자의든 타의든 내겐 늘 맞수가 있었다. 시작은 16개월 터울 진 동생이 태어나면서부터였다. 어른들은 툭하면 우리 둘을 비교했다. 큰거는 어떻고 작은거는 저떻고. 비슷했던 우리가 어느 순간 외모나 성향이 딴 집 애들처럼 바뀐 건 반발심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좁은 골목을 벗어나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인 경쟁자들이 생겼다. '맞수'란 말도 그때 알았다. "얘 맞수는 누구냐?" 선생님들은 부러 고만고만한 실력을 가진 아이들을 맞수로 묶어주었다. 맞수들은 일등과 꼴찌를 서로 주고받았다. 그런데 큰애에게는 맞수가 없어 보인다. 어느 누구건 자신보다 예쁘고 노래도 잘하고 성적도 좋다. 그런 아이의 마음이 예쁘게 보이다가도 한편 그런 네 마음은 편하겠지만 어느 누가 너의 욕심을 불러일으켜 좀더 잘할 수 있도록 채근질을 해줄까 싶다.
요즘은 맞수란 말도 잘 쓰지 않는다. 대신 '엄친아' '엄친딸'이 있을 뿐이다. 외모면 외모, 성적이면 성적, 어느 것 하나 뒤처지지 않는다는 엄마친구의 딸과 아들. 빈 틈이라도 좀 있어야 따라잡고 싶은 마음도 생길 것 아닌가. 큰애의 저 태평함은 어쩌면 시작도 해보지 못한 좌절일 수 있다. 내겐 맞수가 많았다. 그애를 따라잡느라 백미터 달리기의 기록이 무려 3초나 당겨진 적도 있었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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