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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옷 시장, 보여줄 게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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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옷 시장, 보여줄 게 넘친다

입력
2009.08.31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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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A씨는 속옷이 두 종류다. 데이트용과 일상용. 데이트용(8만~10만원)은 두 배 이상 비싼 나름 명품이다. 가격대와 쓰임새도 다르지만 보관도 달리한다. 평소 입는 속옷은 옷장에 개켜져 있지만 야하고 화려한 데이트용은 엄마에게 들킬까 봐 숨겨뒀다가 클럽 가는 날 등 특별한 날만 입는다.

속옷의 변화가 연애 여부의 잣대가 되기도 한다. 대학생 B씨는 "평소 '병원 속옷'만 입던 친구가 야한 디자인으로 바꾸면 연애가 잘 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했다. 환자들이나 입을 펑퍼짐한 하얀 면 속옷을 상징하는 '병원 속옷'은 영화 '우리 방금 결혼했어요'에 나오는 대사를 빗댄 표현. 주로 부모가 사주며, 고루하고 무미건조한 디자인의 속옷을 통칭한다.

#20대 회사원 C씨는 최근 여자친구와 속옷을 맞춰 입었다. 허리 고무줄대신 브랜드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힌 드로즈(삼각과 사각의 중간형태로 몸에 딱 붙는 팬티)가 포함된 커플용 세트다. 그는 "속옷은 아무거나 입는 편이었는데 연인과 같은 브랜드, 같은 디자인의 속옷을 입으니 일체감이 더 생긴다"고 했다.

올 들어 신규 속옷 브랜드가 부쩍 늘고 있다. 벌써 10가지 가까이 된다. 유명 겉옷(아웃웨어) 브랜드가 새로 속옷라인을 내놓거나, 라이선스만 빌려주거나, 직접수입하기도 한다. 대부분 화두(話頭)는 '섹시' 혹은 '섹슈얼리즘'이다. 타깃도 주로 20~30대다.

전략도, 타깃도 엇비슷한 속옷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겉옷업체의 영토확장, 깐깐하기로 소문난 속옷 제작기술(수십 가지의 소재, 세심한 수작업 등)의 보편화 등이 업계가 내놓는 개전(開戰) 요인이지만 은밀한 속살은 따로 있다.

바로 성(性) 개방과 맞물린 사회 분위기다. 혼전순결이 더 이상 미덕이 아닌 터라 속옷도 남들에게 보이는 하나의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효리 채연 손담비 등 유명 연예인들의 속옷 노출, 홍대 청담동 등지의 클럽문화 발달도 속옷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 한마디로 '속옷 성전(性戰)'의 시대가 왔다.

지금껏 속옷은 주로 어머니 장바구니에 담겨왔다. 겉옷은 디자인이며, 브랜드며 직접 골라 입는 반면 굳이 보이지도 않는 속옷은 집착하지 않는 게 보통이었다. 편안하고 깨끗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욕망은 늘 감춰져 있다. 비비안의 상품기획자(MD) 홍성범 대리는 "우리나라 속옷은 보수적인데 실은 (소비자들은) 굉장히 섹시하고 화려한 걸 원한다"고 할 정도. 미디어가 포장하고 사회가 변하면서 속옷도 차츰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영리한 업체들은 이를 놓치지 않는다.

명품이나 유명 브랜드의 소비는'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기 마련. 비밀스러운 데이트용, 독자적인 패션 아이템으로 등장한 섹시 속옷은 특히 젊은 층에게 인기다. 화려한 무늬나 색색의 브래지어 끈을 보이게 하거나(여성), 속옷의 브랜드 로고가 바짓단 위로 살짝 드러나도록 입는(남성) 식이다. 특히 겉옷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유명 브랜드를 노출하는 효과도 낼 수 있다.

매출 상승세도 눈에 띈다. 섹시한 속옷은 이전엔 홍등가가 밀집한 청량리나 미아리에서 잘 팔렸다는 게 업계의 설명. 그러나 최근엔 전국구다.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20~30대를 타깃으로 한 과감한 콘셉트의 란제리 브랜드 매출은 매달 40%이상 신장하고 있다. 전체 속옷 매출(10~15%)과 비교하면 3배 가량 높은 수치다. 주 구매층도 40대 이상에서 20~30대로 바뀌고 있다.

매장도 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6월 새로 단장한 영 웨이브 매장에 게스, 에고이스트 등의 파격적인 속옷을 내놓아 하루 평균 400만~500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최근엔 국내에서 볼 수 없었던 전문관 수준의 란제리 매장도 냈다.

우아함과 기능을 강조하던 기존 속옷 브랜드도 일찌감치 성전에 동참하고 있다. 비비안의 '블루 비비', 비너스의 '핑크 비너스' 등은 주니어 고객을 타깃으로 삼아 '아줌마 속옷'이란 꼬리표를 지우고 있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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