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ㆍ분산투자 하세요" "안전자산으로 갈아타세요" "주거래은행과 거래하세요".
웬만한 투자자라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 재테크 상식들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변하고 있다. 누구도 예상 못했던 메가톤급 충격과 올 들어 나타난 깜짝 회복세는 곧이곧대로 원칙을 지킨 투자자들을 종종 바보로 만들고 있다. '언제든 이런 위기가 재발할 수 있다'는 위기감 역시 기존 원칙들을 무색게 한다. 재테크 전문가들은 "금융위기가 재테크의 기본 환경까지 바꾸어 놓았다"며 "기존 상식을 맹종하기 보다, 갈수록 현명하고 유연한 대응이 필요할 때"라고 조언한다.
무조건 장기투자? 상황에 맞춰 장ㆍ단기 달리해야
2007년 유럽지역 펀드에 각각 1억원을 투자했던 P씨와 K씨. P씨의 요즘 수익률은 여전히 반토막인 반면, 지난해 장기보유를 권하는 창구직원의 만류를 뿌리치고 -30% 상태에서 손절매해 국내주식형펀드로 갈아 탄 K씨는 어느새 원금 1억원을 거의 만회했다. P씨의 뚝심과 K씨의 결단에 명암이 엇갈린 셈이다.
'무조건 장기투자가 좋다'는 금언은 어느덧 옛말이 됐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다우지수가 1,000에서 1만까지, 한국의 코스피지수가 2003년 이후 4년에 걸쳐 2,000까지 오르던 시절, 장기투자는 곧 진리로 통했지만 지난해와 같은 충격을 겪으면서 빛이 바랬다"고 말한다. 기업은행 강우신 강남PB센터장은 "아니다 싶으면 과감하게 정리하는 노련함과 내가 정한 수익률에 이르면 미련없이 발을 빼는 절제가 필요해 졌다"며 "내가 투자하는 상품이 장기투자에 맞는지부터 먼저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내ㆍ해외 분산투자면 든든? 시기ㆍ섹터로도 나눠야
3년 전 분산투자를 목적으로 국내주식형펀드와 해외주식형펀드에 각각 5,000만원씩을 넣었던 L씨는 요즘 후회 막급이다. 지난해 글로벌 위기가 닥치면서 해당펀드들의 수익률 그래프는 거의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1억원을 비슷한 펀드 2개에 넣은 것과 별 차이가 없었던 셈이다.
한동안 '디커플링'(탈동조화)이라는 말과 함께 국내외 증시가 달리 움직일 때가 있었다. 국내 증시가 하락해도 해외는 올라 일정 수익률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글로벌 위기는 갈수록 전세계 시장을 '동조화'시키고 있다. 중국 증시가 폭등하면 다음날 미국 증시가 어김없이 따라 오른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제는 보다 정교한 분산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같은 목돈이라도 시기를 나눠 투자(시기 분산)하고 시장 상황에 따른 영향이 상이한 상품에 나눠 투자(섹터 분산)하라는 얘기다. 국민은행 이정걸 재테크팀장은 "한가지만 꼽으라면, 꾸준한 적립식 투자를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위기 땐 안전자산만? 위험도만 재조정
O씨는 지난해 금융위기가 터지자 투자금의 30%에 달하던 모든 펀드를 환매해 정기예금에 넣었다. 덕분에 추가 손실은 면했지만 1년간 건진 수익은 3~4% 이자가 전부. 반면, 비슷한 시기 펀드 투자금 2억원 가운데 1억원을 환매해 ELS(주가연계증권) 펀드와 CP(기업어음)에 절반씩 투자한 Y씨는 지금 15% 가량의 수익을 내고 있다.
무조건 위험을 피하는 것도 능사가 아니다. 큰 위기가 왔다고 예ㆍ적금 같은 안전상품만 찾는다면 낮은 수익률을 감수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위험상품의 투자비중은 유지하되, 상대적으로 덜 위험한 상품으로 갈아탈 것을 권한다. 원금이 거의 보장되는 ELS펀드나 등급이 높은 CP 등은 같은 위험상품이지만 안전상품과 손실 가능성은 큰 차이가 없으면서 이율은 훨씬 높다.
주거래은행이 만능 아니다
갈수록 금융권이 지주사 형태로 묶이는 추세에 맞춰 가급적 한 은행과 거래를 집중하라는 권유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한동안은 각종 수수료 감면혜택과 우대금리 등을 미끼로 '주거래은행을 정하라'는 상식이 유행했지만, 이는 동시에 금융사들의 특화상품을 이용할 기회를 잃는 셈이 된다.
한 은행 PB는 "수수료 몇 푼 아끼는 것보다 거래처 '몰빵'에 따른 손실이 훨씬 클 수 있다"며 "자신의 금융거래 형태에 맞게 거래 금융사를 선택할 필요가 있다"고 권했다. 언제든 현금화가 필요한 자산의 경우, 은행 예ㆍ적금이나 MMF보다는 증권사의 CMA가 낫고, 대출이나 예금을 이용할 사람은 주거래은행에 포인트를 쌓는 게 낫다는 얘기다. 펀드 역시 누가 파느냐보다 수익률이 높은 회사를 선택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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