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당 정권으로는 더 이상 안 되겠다."
30일 일본 총선에서 민주당을 선택한 일본 유권자들은 한결같이 자민당 정권을 부정해야 할 시기가 왔다고 말하고 있다. 이번 일본 중의원 선거는 민주당에 대한 기대와 열광의 표시라기보다 자민당에 대한 환멸과 부정의 결과다. 자민당 지배의 전후 정치제제가 무너진 것이다.
1955년 창당 이후 일당 지배를 이어온 자민당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 참의원 선거 때부터다. 이 선거에서 자민당은 야당인 사회당에 10석 뒤지며 창당 이후 처음 과반수 확보에 실패했다. 리크루트사가 자민당 거물 정치인들에게 공개 전 주식을 건넨 것이 폭로돼 자민당의 정경유착이 발가벗겨진 이듬해였다. 당시엔 보수정당에 더 없는 버팀목이었던 냉전체제가 막을 내리고, 자민당 최대 공적인 고도성장은 거품이 터지기 직전의 위태로운 절정을 맞고 있었다.
1993년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여전히 제1당을 유지했지만 반자민 연립의 호소카와(細川) 내각에 정권을 뺏겼다. 자민당 창당 후 첫 정권교체였다. 이듬해 사회당과 손 잡고 정권을 되찾았지만 자민당은 이제 예전같지 않았다. 단독 정권이 불가능해 사회당, 공명당과 손을 잡아야 정권 유지가 가능했다.
자민당 창당 이듬해부터 73년까지 일본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9.1%. 이후 거품경제가 꺼지기 직전인 1990년까지는 3.8%였다. 이 고도성장이 자민당 1당 지배를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잃어버린 10년'의 장기불황을 겪으면서 2007년까지 성장률은 0.3%로 추락, 자민당 입지를 좁혔다.
'우정(郵政)민영화'로 대표되는 고이즈미(小泉) 정권의 작은 정부 지향은 그런 고민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경쟁과 능률을 우선시하는 고이즈미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양극화라는 사회적 고통을 수반했다. 일본 언론 조사에 따르면 자신이 중간층이라고 여기는 일본인이 1987년에는 75%였지만 2006년에는 54%로 줄었다.
자민당의 한계를 체감한 유권자들이 결정적으로 '정권교체'를 결심하게 만든 계기가 있다. 2006년 고이즈미 총리 퇴진 이후 3년 동안 계속된 자민당 정권의 리더십 부재다. 아베(安倍)에서 후쿠다(福田), 아소(麻生)로 이어가며 1년마다 총리가 바뀌었다. 자민당 '55년 체제'를 지탱해온 파벌 정치, 선거구를 물려 받는 의원 세습 등 자민당의 낡은 구조에 진저리치는 국민들이 갈수록 늘었다.
이는 곧 민주당이 1998년 창당 때부터 목표로 했던 '정권교체'를 실현할 절호의 기회가 왔다는 뜻이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은 관료주도 정치의 개혁을 외치며 낡아빠진 자민당 체제를 정면 부정했다. 육아지원금 등 서민에 대한 막대한 재정 지원책도 효과를 발휘했다. 노나카 나오토(野中尙人) 가쿠슈인(學習院)대 교수는 "일본 전후정치 체제는 명실상부하게 끝났다"며 "앞으로 10년 이상 서서히 일본 정치는 모든 것이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김범수 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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