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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용진의 미디어 비평] '미수다' 막 내려야할 때 알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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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용진의 미디어 비평] '미수다' 막 내려야할 때 알아야

입력
2009.08.3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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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거주 아프리카인의 주말 명소는 서울 이태원이란다. 이미 그곳엔 아프리카 국가의 이름을 딴 거리도, 아프리카 음식을 내놓는 식당도, 그들만을 위한 편의시설도 군데군데 있다. 아프리카 커뮤니티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아프리카 이주 노동자들은 왜 이태원을 주말 근거지로 삼았을까. 미국 인류학자 알렉스 레온하트는 한국인이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가 만든 결과라고 말한다. 주한 미군으로 대접받으려는 아프리카인들의 전술적 선택이라고 해석한다. 한국인의 편견과 아프리카인의 대응이 만들어낸 인문지리적 결과라고도 했다.

일상 속 외국인이 보이는 사고, 행동, 문화는 곧 한국의 지표다. 아프리카인에서 한국을 읽을 수 있고, 그들의 살림살이에서 한국적 문화도 훑어낼 수 있다. 너무 낯익어서 잘 들여다보지 못했던 한국의 삶을 읽을 수 있는 유용한 텍스트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의 등장이 반갑고, 고맙다.

KBS '미녀들의 수다'의 시작도 분명 그런 뜻이었으리라. 한국의 편린을 담은 외국인을 통해 스스로를 되돌아보자는 의도도 담겨 있었을 것이다. 타자들의 용기 있는 등장, 솔직한 한국 말하기가 그래서 처음에는 반가웠고, 고마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이태원을 찾는 아프리카인들의 전술적 선택처럼 미녀들도 곧 한국과 방송을 간파하기 시작했다. 수다에도 금기사항이 있음을 눈치 챘다. 가능한 한 수위 조절을 해 나갔다. 혹 한국인의 자존심을 건드릴 때는 귀엽고 예쁜 표정을 동원했고, 백치미로 커버하는 지혜도 십분 발휘했다.

프로그램을 통해 성공을 거두는 원칙도 미녀들은 터득했다. 한국에 푹 빠졌음을 반복적으로 고백하거나, 한국인 남자와 사랑을 나누거나, 아직 한국을 몰라 우왕좌왕하는 푼수이거나, 한국을 배울 각오로 충만한 워너비(wanna-be)이거나.

그 원칙을 어겼을 때는 심한 응징이 뒤 따른다.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 중인 독일인 베라 호흘라이터의 고생이 그 예다. 독일에서 출판한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 이라는 책 탓이란다. 책에서 한국인들이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에 쓴소리를 했던 모양이다. 네티즌들이 울컥해 악플을 남겼고, 언론이 받아 적는 소동이 있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5년을 산 독일인 마디아스 슈페히트는 황당한 눈초리를 모은 이 프로그램에 쓴소리를 보탰다. 마치 동물원 같단다. 외국인 데려다 놓고 한국말 시키고, 그들의 억양을 듣고 웃고, 김치 먹을 수 있냐고 물으니 웃기기 짝이 없단다. 100년 전으로 돌아가 사는 느낌을 받았다고도 했다.

자신을 비추어줄 타자조차 같은 사람으로 만드는 프로젝트에 한국은 열심이다. 자신을 들여다볼 수 없는 숙명적 한계를 극복할 기회조차 무산시키려 한다.

그들이 곧 자신의 지표, 거울임을 알면서도 '미녀'들을 한 몸 되게 만들고, 전술적 선택을 하게 만들고 있다. 자신의 눈을 찔러 눈을 멀게 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아직 인기가 있어 미련은 남겠으나 접을 때를 적절히 택하는 것도 프로그램을 오래 기억하도록 하는 지혜가 아닐까.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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