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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칩거 1년, 손학규가 찾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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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칩거 1년, 손학규가 찾는 것

입력
2009.08.3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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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이상 칩거하고 있는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를 찾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25일 오후 강원도 춘천 대룡산 근처라는 말만 듣고 나섰지만 마을 어귀에서 '손학규' 이름 석자를 대니 촌로가 길을 알려준다. 비포장 외길을 조금 오르니 산 초입에 작은 집 한 채 달랑 있다. 인적도 드문 이 곳에서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 것인지.

문도 없는 집으로 들어서자 부인 이윤영씨가 맞는다. 몸뻬 차림으로 영락없는 시골 아낙이다. 신원을 밝혔는데 과객을 대하듯 심드렁하다.

손 대표를 찾자 "산에 갔다"면서 "한 시간 걸릴 때도, 두 세시간 걸릴 때도 있다"고 한다. 왔다가 그냥 돌아간 기자들도 있었다고 한다. 하긴 지난 1년 간 인터뷰 기사 한 번 없었다.

마을로 내려가 한 바퀴 돌고 올라왔다. 기척이 있다. "오셨냐"고 하자 손 전 대표는 "샤워 좀 하고 나갈 테니 기다리라"고 한다. 뒤뜰 낡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조금 있으니 밀짚모자를 쓴 그가 왔다. 농부 같다. 편안한 표정인데 객을 맞이하는 게 그 역시 심드렁하다. 정말 정치와 거리를 둔 것인가?

"도 닦느냐"는 말을 삐딱하게 툭 던졌다. 웃는다. "언제 여의도로 돌아오느냐"고 묻자 "집 주인이 나가라고 하면 가겠다"고 했다.

뭐라 또 물으려 하자 뜰 옆 닭장으로 간다. 오골개 토종닭 칠면조 병아리 등 얼추 50마리 이상이 와글거린다. 모이도 준다. 한참 닭 얘기를 한다. 오골계는 횃대에서 자고 다른 닭들은 박스 위에서 자는데, 한 곳에 비집고 들어가 함께 잔다는 닭들의 집단주의도 설파한다.

다시 낡은 의자로 왔다. '낚시'를 던졌다. "출마설이 나오는 곳이 어디냐"고 짐짓 모르는 듯 묻자 "수원 장안구던가"라고 한다. "(박 의원 선거법 위반에 대한) 재판은 어찌됐느냐"는 말에 "연기된 모양"이라는 답이 온다. "10월 재보선 이전에 결론 나느냐"고 묻자 그럴 수도, 안 그럴 수도 있다고 한다. 모습은 농부지만 시선마저 완전히 여의도를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빈소에서 느낀 소회를 물었다. "차이가 있더라. 노 전 대통령 조문에는 정서적, 감성적 기류가 강했는데 DJ 조문에는 DJ 삶에 대한 성찰, 이해가 깔려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나름 시대가 요구하는 지도자를 가졌다는 얘기를 했다. 이에 토를 달자 1970년대 남부 유럽의 민주화로부터 90년대 동구 민주화에 이르는 세계의 민주화 역사, 또 한국 민주주의를 분석하며 한국 현대사의 순리론을 펼쳤다. 이어 토니 블레어의 제3의 길, 클린턴의 시장주의 그리고 그 한계 등 대화는 종횡으로 넘나들었다.

그는 시대정신을 찾고 있는 듯 했다. 이는 그가 발을 딛고 있는 민주당의 가야 할 길과도 맞닿아 있었다. 그래서 "찾았냐"고 물었다. 아무 말이 없었다. 아직도 진행형인 듯 했다.

순간 "전화 왔어요"라는 부인의 외침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어둑어둑하다. 막국수를 먹으러 갔다. 손님들이 인사를 한다. 여전히 그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너무 늦지도, 이르지도 않게 돌아오시라"는 작별 덕담에 그는 미소로 답했다. 그가 돌아올 때 해답을 갖고 왔으면 한다. 그게 본인에게도, 민주당에도, 한국 정치에도 도움이 될 테니까.

이영성 기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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