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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베스트 셀러를 읽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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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베스트 셀러를 읽지 않는 이유

입력
2009.08.3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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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둘째 주 수요일은 독서회에 가는 날이다. 시립도서관의 성인 독서회인데 벌써 15년째 지도강사 노릇을 하고 있다. 말이 지도이지, 책을 추천하고 토론을 정리하는 게 전부다. 열 명 안팎의 회원들이 한 달에 한 번 책 한 권을 놓고 토론한다. 500 쪽이 넘는 묵직한 인문서를 읽는 일이 다반사라 분위기는 사뭇 진지하다.

책을 추천할 때는 다양한 분야의 책, 덜 유명한 책, 많이 안 팔린 책을 소개하려고 애쓴다. 세상은 넓고 책은 많으며 우리의 무식은 끝이 없음을 되새기기 위해서다. 사실 큰 출판사에서 나온 유명 작가의 유명한 책을 소개하면 편하긴 하다. 내용이 좀 실망스러워도 호평을 실은 신문 잡지나 기자, 평론가들을 탓하면 되니까. 그럼에도 일부러 도서목록을 뒤져서 작은 출판사의 덜 알려진 책을 '발굴'하려고 애쓰는 까닭은 출판사에서 일한 경험 때문이다.

내가 출판 일을 시작한 곳은 직원 네댓 명의 조그만 인문출판사였는데, 제일 힘든 것이 홍보였다. 돈이 없으니 광고를 할 수가 없고, 광고를 못하니 책이 알려지지 않고, 알려지지 않으니 팔리지 않는다. 책이 안 팔리면 그 책 하나만 망하는 게 아니다. 괜찮은 기획을 해도 능력 있는 필자를 섭외하기가 힘들고, 좋은 책을 낼 확률이 점점 줄어들면서 악순환이 반복된다. 번역서도 사정은 비슷해서 내용도 좋고 팔리겠다 싶은 책은 경쟁이 치열하다. 결국 승부를 결정짓는 건 자본력이다.

최근 국내 대형 출판사에서 일본 유명작가의 신작을 14억 원(출판사 주장 10억 원)의 선인세를 주고 계약했다고 해 화제다. 일본 문학 선인세로는 역대 최고다. 너무했다, 아니다, 말들이 많지만 출판사 입장에선 이런 구설도 싫지 않을 것이다.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어쨌든 책 광고가 되니 말이다.

독서 인구로 보면 한국의 출판시장은 그리 크지 않다. 국민의 반은 책을 한 달에 한 권도 읽지 않고 25%는 일 년 내내 한 권도 안 읽는다. 1인 당 평균 독서량은 13권(일본은 78권)으로, 세계 100위 권 밖에 드는 조촐한 양이다. 그래도 100만 부 넘는 밀리언 셀러는 종종 나온다. 여간해선 책을 읽지 않지만 남들이 다 읽었다고 하면 읽는다는 얘기다. 그래서 출판사들은 사재기로 판매 순위를 조작하고 버스 옆구리에까지 책 광고를 해댄다. 다들 읽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다들 읽는 책이 나쁜 책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얇은 독자층에서 수십, 수백만 부짜리 베스트 셀러가 나오는 풍토는 나쁘다. 한 권의 책이 수십만 권의 책을 대신해 읽히는 세상에선 그만큼 다양한 생각과 창의가 나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책이건 뭐건 독과점이 심화되면 결국 독재의 그늘이 드리우기 때문이다.

얼마 전 청와대는 미디어법의 통과로 우리도 타임 워너 같은 글로벌 미디어기업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언론도 슈퍼마켓도 경쟁력이 최고인 시대다. 조만간 출판사도 10억 인세를 척척 내는 대형 몇 곳만 남고 초판 1,000부짜리 인문 교양서로 먹고 사는 조그만 곳들은 문을 닫겠지만, 펭귄이나 랜덤하우스 같은 글로벌 출판사를 가질 수 있다면 뭐가 문제겠는가. 게다가 사람들 생각이 비슷해지면 다툴 일도 없을 테니 이래저래 좋은 일이렷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은, 작은 것들이 다 죽은 다음에 큰 것들끼리 남아서 어찌 사나 하는 것이다. 밟고 일어설 작은 것들이 다 죽었으니 저희끼리 어찌 살지, 괜히 쥐라기 공원이 떠오르면서 마음이 심란해진다.

김이경 소설가ㆍ독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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