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으면 좋겠다 살다가 지친 사람들
가끔씩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계절이 달아나지 않고 시간이 흐르지 않아
오랫동안 늙지 않고 배고픔과 실직 잠시라도 잊거나
그늘 아래 휴식한 만큼 아픈 일생이 아물어진다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중략)
좋겠다 사철나무 그늘 아래 또 내가 앉아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내가 나밖에 될 수 없을 때
이제는 홀로 있음이 만물 자유케 하며
스물두 살 앞에 쌓인 술병 먼 길 돌아서 가고
공장들과 공장들 숱한 대장간과 국경의 거미줄로부터
그대 걸어 나와 서로의 팔목 야윈 슬픔 잡아준다면
좋을 것이다 그제서야 조금씩 시간의 얼레도 풀어져
초록의 대지는 저녁 타는 그림으로 어둑하고
형제들은 출근에 가위눌리지 않는 단잠의 베개 벨 것인데
한 켠에선 되게 낮잠을 자 버린 사람들이 나지막이 노래불러
유행 지난 시편 몇 구절을 기억하겠지
바빌론 강가에 앉아
사철나무 그늘을 생각하며 우리는
눈물 흘렸지요
● 사철나무, 그 푸르른 나무 아래 쉬면서 청년 장정일은 이렇게 소망했다. 삶에 지친 사람들이 쉬는 자리, 청춘이 청춘을 서럽게 응시하는 자리. 공장, 그 어두움과 뭔가를 만들어내어 시장에 내보내기에 바쁜 대장간과 국경이라는 인위적인 경계가 무너지고 드디어 시간의 얼레마져 풀려서 나즉히 저녁이 오기를.
이 저녁이 저물어 밤이 오고 드디어 새벽이 와서 다시 일자리로 가야 할지라도 가위눌리지 않고 잠을 청할 수 있기를. 하지만 그 아늑한 푸른 그늘 아래에서도 인생은 누군가에게 잡혀온 영원한 포로인지 '유행 지난 시편'을 읊게 되는데,
아, 하필이면 고향을 강제로 떠나와서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왔던 이들의 기억을 들추다니! 그 애잔한 타향살이를 떠올리다니. 어떤 시인의 말대로 우리는 삶에 잠시 전세로 살고 있는 것일까? 어딘가에 두고 온 그 무엇이 있어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인생인가?
허수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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