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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 작가 이우환 첫 조각전/ "따로 살던 돌과 철 인연 맺어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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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 작가 이우환 첫 조각전/ "따로 살던 돌과 철 인연 맺어줬지"

입력
2009.08.31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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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난 흰색 방 안. 커다란 철판이 벽에 기대 서 있고, 얼마쯤 떨어진 곳에 둥그런 돌 하나가 놓여있다. 지극히 단순한 돌과 철의 조합이지만, 거기서 배어나오는 기운은 쉽게 입을 열고 말할 수 없게 만든다.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이우환(73)씨의 조각 '침묵'이다.

일본을 거점으로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그의 이름 앞에는 '세계 시장에서 통하는 유일한 한국 생존 작가', '한국 생존 작가 중 가장 작품값이 비싼 작가' 등 화려한 수식이 붙는다.

경매나 아트페어에서 그의 회화작품을 빼놓지 않고 만날 수 있었지만, 전시 소식은 오랫동안 들리지 않았다. 그가 국내에서 개인전을 연 것은 6년 만이고, 조각만으로 전시를 하는 것은 처음이다.

그는 이번 전시에 '관계항' 시리즈 10점을 선보였다. 빈 캔버스에 점 몇 개를 찍거나 선 몇 개를 그은 게 전부인 그의 회화처럼 조각 역시 지극히 정제되어 있다. 그가 에세이집 <시간의 여울> (현대문학 발행)에서 썼듯 "산소 버너로 철판을 자르고 커다란 돌을 찾아 와서 그럴듯한 장소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짜맞춰 놓아두는 것"이 그의 조각이다.

오랜 시간 땅에 묻혀있었거나 강가에서 세월의 풍파를 맞던 돌들은 새로운 공간으로 옮겨져 각기 다른 방식으로 철판과 관계를 맺었다. 이씨는 거기에 '대화' '휴식' '눈짓' '응답' '바라본다는 것'등의 제목을 붙였다.

장벽처럼 우뚝 서있는 철판 양쪽에 놓인 두 돌은 '대화'를 나누고 있고, 야외 정원에서는 돌 위에 길다란 철봉이 몸을 걸친 채 '휴식'을 취하고 있다. 바닥에 놓인 철판의 양쪽에 놓인 두 돌 사이에서는 팽팽한 긴장이 느껴지고('역학관계'), 멀찌감치서 돌을 바라보던 철판은 끝부분을 살짝 들어 '응답'하고 있다.

이렇듯 가공을 최소화함으로써 본래 그 사물의 고유한 세계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산업사회의 대량생산에 대한 거부감인 동시에, 그가 창시해 1970년대 일본 미술계를 풍미한 예술 유파인 '모노파'(物派)의 정신이기도 하다.

"돌은 그 나라 사람의 얼굴"이기에 전시할 때마다 해당국의 돌을 구해서 쓰는 이씨는 돌을 수집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뉴욕의 공사장, 알프스산, 템즈강, 설악산 등 가보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한다. 1971년 파리 비엔날레 때는 전시 개막 전날까지 헤매고도 원하는 돌을 찾지 못하다 공원의 정원에 있는 돌을 갖다 쓴 적도 있다.

그는 "돌의 종류는 중요치 않다. 단지 특징이 없는 중성적인 것들을 택한다. 너무 잘생기면 목소리가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남녀가 마주쳐 자연스레 좋아하게 되는 것처럼 원래 장소에 따로 살던 돌과 철을 불러내 인연을 맺어주는 일"이라고 요약했다.

그의 작품은 조용하다. 소리내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무덤덤한 침묵이 너무 많은 정보와 이야기 속에 사는 우리들을 귀기울이게 만든다. 이씨는 "나처럼 내 작품들도 매우 수줍기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 앞에서는 쉽게 말을 하지 않는다. 극소수와의 대화가 좋다"며 웃었다. 전시는 10월 9일까지. (02)733-8449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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