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좁고 인구 많은 나라에 오지가 많을 것 같지 않지만 문명과 등진 오지는 있게 마련이다. ..., 막힌 듯 뚫린 산길을 넘고 내(川)를 건너 오지마을을 차례로 찾아 가본다." 1986년 8월 '한국의 오지'시리즈는 험한 여정이 될 것임을 예견하는 서문과 함께 시작됐다. 그 후 1988년 말까지 우리의 '잃어버린, 그리고 잃어버릴 고향'을 빠짐 없이 기록하며 전국을 누볐다.
디딜방아와 등잔불, 외양간을 겸한 부엌과 10리를 걸어 통학하는 아이들... 시리즈가 거듭 될수록 더 많은 추억 속 낱말들이 살아있는 실체로 눈 앞에 다가왔다. 2년 반 동안 '한국의 오지'를 목격하며 느낀 소회를 마지막 회 취재후기에 이렇게 적었다.
"사라져 가는 오지마을의 숫자에서 다행스러움을 느낀다. 그 곳은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우리의 고향이다. 이제 그들도 환한 불빛 아래에서 칼라TV를 즐기길 바란다. 그러나 그들이 찌든 도시문명에 물들지 않기를 또한 진심으로 바란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오지'는 얼마나 변해 있을까? 문득 가슴에 이는 궁금증에 잃어버린 고향을 다시 찾아 나섰다.
첫 행선지를 전남 신안군 가거도(可居島)의 해변으로 잡았다. 1987년 2월 당시 유난히 매서웠던 북서풍 때문에 '개고생'을 했던 곳이다. 며칠 동안 발이 묶여가며 다다른 선착장은 이미 파도에 쓸려 배를 댈 수가 없었다.
살을 에는 바닷물에 몸을 던진 끝에 조약돌이 소박하게 깔린 해변에 겨우 올랐다. 바람이 잦아들자 비로소 수평선 위로 솟은 회룡산이 만들어내는 비경이 눈에 들어왔다. 찾아가는 길이 힘들었던 까닭일까? 해변의 첫 인상은 가거도의 대표적인 얼굴로 기억 속에 남았다.
20년이 지나 다시 찾은 가거도의 해변. 순수했던 섬마을 아이들은 물론 그 자리에 있었으면 더 동글동글 해졌을 조약돌도 자취를 감췄다. 대신 주민들의 숙원이던 현대식 항구와 '글로벌'한 이정표가 가거도의 성공적인 리뉴얼을 알리고 있다.
자연과 문명이 조화롭게 어울린 해변에는 회룡산만이 유일하게 간직되고 있었다. '사람이 살 수 있다(可居)'는 이름 자체가 역설이었던 척박한 섬 가거도. 세월과 더불어 '사람이 정말 살수 있는' 곳이 됐지만 20년 전의 포근했던 풍경은 이제 전설이 되어버렸다.
편집위원 s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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