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을 하고 있는데 우리는 '리레버리징(부채의 재증가)'을 하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이 올 들어 급증하고 있는 국내 가계부채를 우려하며 하는 말이다. 2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미국 일본 스페인 등 주요국들의 가계부채는 최근 수년 동안 감소하거나 정체 상태인 반면 우리나라는 유독 꾸준한 비율로 상승해 왔다. 특히 올 들어 증가한 가계부채는 또 다른 금융위기를 불러 올 수 있는 몇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 생계형 대출 부실화 우려
먼저 주택담보대출 중 주택구입 목적이 아닌 생계형 대출 비중이 급격히 늘었다는 점. 김종창 금융감독원장도 6월 말 "올해 늘어난 주택담보대출은 절반 정도가 생계형 자금"이라고 말한 적 있다. 경기 침체로 내수가 위축되면서 소득이 급감한 자영업자들이 사업자금이나 생계 목적 대출을 늘린 것이다.
예전에는 주택담보대출 전체의 80% 가량이 주택 구입 목적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큰 변화다. 자산 확대 목적이 아닌 소비 목적의 대출 비중이 증가했다는 점에서 부실 위험이 커졌다고 볼 수 있다.
가계의 소득과 자산은 크게 늘지 않았는데 대출이 급증했다는 점도 문제다. 가계의 원리금 상환 능력을 나타내는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올해 1분기에 140%(가처분소득보다 금융부채가 40% 많다는 뜻)을 넘었으며, 이후로도 계속 악화하고 있다. 더구나 선진국과 달리 대부분 가계부채가 변동금리여서, 향후 시중금리 상승 시 이자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현재와 같은 추세로 가계 빚이 증가할 경우 가계 신용위험은 신용카드 대란 수준으로 증가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이와 관련 "가계부채가 2분기 주택담보대출처럼 큰 폭으로 증가할 경우 연말께 2003년 카드 대란 당시의 수준으로 신용위험지수가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 금융당국 선제대응 필요
물론 가계 빚 증가가 단기적으로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경제 침체의 충격을 줄이고 소비가 급격히 위축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가계대출이 꿈틀거리는 부동산을 중심으로 계속 증가하면 버블이 형성될 수 있고, 이 때문에 통화당국이 금리인상에 나설 경우 갑작스런 이자 부담에 대출 부실로 연결될 수 있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가계부채가 위험수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섣불리 나서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가계대출 축소가 부채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저소득층이 타격을 입는다는 점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DTI 규제를 재도입할 필요가 있다"면서 "대출에 대한 위험가중치를 탄력적으로 운용하고 가계대출 구조를 변동금리에서 고정금리, 중단기에서 장기로 전환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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