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조경 전문가들이 둘러보고는 "자연과 인공의 최적의 조합. 이것이야 말로 신의 정원이다"고 극찬했다는 조선의 왕릉. 유네스코는 최근 한국의 조선 왕릉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왕릉은 유교와 풍수를 기반으로 한 독특한 건축과 조경 방식, 지금까지 지켜 내려오는 제례 의식 등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한국관광공사는 9월의 가 볼만한 곳으로 경기 구리시의 동구릉, 고양시의 서오릉, 남양주시의 홍유릉, 화성시의 융건릉, 서울의 선정릉, 강원 영월군의 장릉 6곳의 왕릉을 선정했다.
■ 동구릉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40기 중 가장 많은 9기가 몰려 있는 동구릉은 중국 사신이 '하늘이 만든 땅덩어리'라고 칭송했던 명당 중의 명당이다. 조선왕조 500년 능제의 시원이자 기준이 되는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은 그 조각이 섬세하고 위엄이 넘친다.
영조 능인 원릉은 왕의 오랜 치세답게 규모가 크며, 선조의 능인 목릉은 전쟁을 겪어서인지 투박한 석조물을 보여 주고 있다. 단릉 합장릉 쌍릉 이외에도 산줄기를 달리해 두 분을 모신 동원이강릉, 세 분을 나란히 모신 삼연릉 등 다양한 형태의 능을 볼 수 있어 가히 '조선왕조 500년의 왕릉전시장'이라 부를 만 하다. 동구릉 관리사무소 (031)563_2909
■ 홍유릉
홍릉과 유릉은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이었던 26대 고종과 27대 순종을 모신 능이다. 홍릉에는 명성황후와 고종이 합장돼 있고, 유릉은 순종과 순명효황후 민씨, 순정효황후 윤씨의 합장릉이다. 두 능을 합쳐 흔히 홍유릉이라고 부른다.
특히 홍릉과 유릉은 조선의 국명을 대한제국으로 바꾸면서 왕이 아닌 황제라는 칭호로 불린 고종과 순종의 능으로, 역대 왕릉과는 달리 중국 황제의 능제를 따라 조성된 독특한 구조를 볼 수 있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남양주시의 '다산 정약용 유적지'는 다산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는 곳이고, 운길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수종사는 두물머리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다. 홍유릉 관리소 (031)591-7043
■ 선정릉
서울에서도 최고 번화가인 강남 한복판에 고즈넉한 조선 왕릉이 자리잡고 있다. 조선왕조 9대 성종의 능인 선릉과 계비 정현왕후 윤씨의 능, 그리고 11대 중종의 능인 정릉 등 세 개의 능이 한 곳에 있다.
왕과 왕비의 무덤은 초·중·고생들에게 역사 체험 학습명소가 되고 잘 보존된 숲은 주변 직장인과 주민들에게 점심시간이나 퇴근 이후 보물 같은 산책 장소가 된다. 매표소를 지나 능역 안으로 발을 들여놓기만 하면 역사의 향기, 숲의 향기가 온몸을 사로잡는다. 선정릉 관리사무소 (02)568_1291
■ 서오릉 서삼릉
서오릉은 조선 왕실 무덤 가운데 동구릉 다음으로 크다. 서오릉은 평지에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어 산책하기 좋고 능 중간에 벤치와 휴식 공간이 만들어져 있어 한 나절 소풍하기 알맞다. 서오릉과 인접해 있는 서삼릉은 가는 길이 한적하고 호젓하다. 희릉 효릉 예릉의 삼릉이 있다고 해서 서삼릉이라 불린다.
서삼릉 주변 농협대와 원당종마목장은 서삼릉보다 더 유명한 인기 여행지다. 원당종마목장에서 초록빛 향연을 벌이는 넓은 초지 위에 한가로이 뛰노는 말들의 모습은 더없이 여유롭다. 서오릉과 서삼릉은 서울에서 가깝고 주변에 배다리술박물관 아름식물원 중남미문화원 등 여행지가 많다. 서오릉 관리사무소 (02)359_0090 서삼릉 관리사무소 (031)962_6009
■ 융건릉
융건릉 비운의 사도세자와 그의 비 헌경왕후(혜경궁 홍씨)를 합장한 융릉과 그의 아들 정조와 효의왕후를 합장한 건릉을 합쳐 부르는 이름이다. 사도세자는 영조가 마흔이 넘어 얻는 아들로 젊은 나이 당쟁에 휘말려 왕위에 오르지 못한 채 뒤주에 갇혀 생을 마감했다.
아버지의 한을 가슴에 품은 정조는 왕위에 오르자 양주에 있던 아버지 능을 화성으로 모시고 현릉원으로 칭해 지극 정성으로 보살폈다. 용주사를 원찰로 하고, 수원화성을 축조해 현릉원 행차 시 머물 곳을 마련했다. 화성의 다른 관광지로는 제부도 궁평항 제암리 등이 있다. 융건릉 관리사무소 (031)222_0142
■ 장릉
조선왕조 6대 왕인 단종의 능이다. 단종은 12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르지만 3년 만에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끝내 죽임을 당하게 된다. 단종이 잠들어 있는 장릉은 남한에 남아 있는 왕릉 40기 중 서울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왕릉이다. 장릉은 그 규모와 양식에서 다른 왕릉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석물의 수가 다른 능에 비해 많이 적고 무인석이 보이지 않는다. 무인석을 만들지 않은 것은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의 칼에 의해 왕위를 빼앗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장릉 관리사무소(033)370_2619
이성원 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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