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장 직속 헌법연구자문위원회가 31일 개헌안 논의 결과를 최종 보고할 예정인 가운데,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권한 조정을 둘러싼 양 기관의 신경전이 벌써부터 시작됐다. 자문위 논의가 헌재의 권한을 강화하는 쪽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법원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자문위 논의 내용 중 대법원이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부분은 '재판소원제' 도입이다. 공권력에 의해 기본권을 침해받으면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는 것처럼, 법원의 판결에 위헌 요소가 있다고 생각하면 헌재에 심판을 제기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 같은 논의에 대해 "사실상 4심제를 하자는 것"이라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송사의 특성상 '끝까지 가보자'는 심리가 작용해 대부분 사건에서 재판소원이 제기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재판소원 남발에 따른 사회적 비용 증가도 우려하고 있다. 정치적 성격이 강한 사건을 다루는 헌재의 특성상 재판소원이 자칫 사법부에 대한 정치적 압박의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도 대법원의 반대 논리 중 하나다.
그러나 헌재는 "재판소원 심사는 재판의 절차적 위헌 여부만 다루기 때문에 실제 본안사건은 많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입법부 활동이 위헌법률 심판으로, 행정부 활동이 행정재판 및 헌법소원으로 통제받고 있는 반면, 사법부의 판결만 그 어떤 통제도 받지 않고 있다는 점도 헌재가 재판소원 도입을 주장하는 논리다.
두 번째 쟁점은 대법원장의 헌법재판관 지명권 폐지 여부다. 현행 헌법은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각각 3명의 헌법재판관을 지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자문위는 대법원장의 지명권을 국회 몫으로 넘기는 쪽으로 의견 일치를 본 것으로 전해졌다.
헌재는 이에 대해 헌법기관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는 인식이다. "선출권력이 아닌 대법원장이 다른 기관의 최고재판관을 임명하는 것은 민주적 정당성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헌재의 작용이 입법ㆍ행정ㆍ사법권에 두루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3권 분립의 정신에 따라 각 기관이 지명권을 분점하는 것이 맞다"며 현행 제도의 유지를 주장하고 있다.
또 하나, 대법원의 '명령ㆍ규칙 위헌심사권'을 헌재로 이관할지 여부도 핵심 쟁점이다. 이 역시 자문위가 규범통제 기능 일원화를 이유로 헌재 쪽의 손을 들어주는 방향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헌재는 법령 해석에 일관성을 두기 위해서는 행정입법인 명령ㆍ규칙의 위헌 여부도 헌재가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대법원 관계자는 "입법 작용은 헌재가, 행정 작용은 사법부가 통제하는 것이 헌법의 정신"이라고 반박했다.
이처럼 자문위 안이 헌재 권한을 강화하는 쪽으로 정리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자, 대법원에서는 위원회의 활동과 구성에 대해서도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논의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며 "사법부 권한 배분이라는 중요한 문제를 다루는 위원회 활동이 비밀로 이뤄진다면 나중에 절차적 문제점을 제기할 수도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줄곧 헌재 권한 강화를 주장해 온 헌법학자들이 자문위의 주요 구성원이라는 점도 문제"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헌재 관계자는 "개헌이 국가발전과 국민생활에 어떤 식으로 도움을 줄지를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데, 대법원이 권한 증감 문제에만 신경 쓰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꼬집었다.
이영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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