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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역 극단 '콩나물', 문화행사 열며 공동체 부활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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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역 극단 '콩나물', 문화행사 열며 공동체 부활 꿈꾸다

입력
2009.08.31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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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오후 대구 달서구 성서주공 1∼3단지 아파트 내 신당종합사회복지관 2층 연습실. 초등학생 20여명이 한창 역할극에 빠져 있었다. 배고픈 하이에나가 되어 마룻바닥을 기어 다녀도 보고 허리 굽은 할머니 시늉도 하면서 친구가 되고 있었다.

대구지역 극단 '콩나물'이 생활문화공동체 부활을 위해 이 아파트에서 펼치고 있는 '다(多)컬처이야기' 사업의 하나인 '놀놀놀' 행사다. '놀토엔 놀이터에 놀러와'의 줄임말인 이 행사의 이날 과제는 공동체 속에서 '나'를 찾는 것.

아직도 서먹한지 구석에서 들은 척도 하지 않는 고학년 몇몇을 위해 원 돌리기가 시작됐다. 어느새 원이 되어버린 아이들은 곧바로 '나'를 찾는 여정에 올랐다. 노랑, 초록의 도화지에 친구가 얘기해줬거나 평소 생각해온 자신의 매력 포인트를 그리는 시간이었다.

지훈(12ㆍ초5)이는 "오늘 처음 본 친구들이 '손이 예쁘다'고 해서 그리고 있다"며 수줍어했다. 발을 큼직하게 그리던 준희(11ㆍ초4)가 "2년 전 인공심장판막 수술을 받기 전까지는 친구들과 같이 뛰어다니지도 못하는 발이 싫었는데 이제는 보기만 해도 좋다"고 하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놀놀놀'을 진행한 콩나물 기획총괄팀장 이효정(26ㆍ여)씨는 "독불장군의 '나'가 아닌 공동체 속에서 '나'를 찾기 위한 프로그램에 어린이들이 잘 따라줬다"고 만족스러워 했다. 초등학생 대상의 이 행사는 다음달에는 '너', 10월에는 '우리'를 테마로 이어진다.

극단 콩나물 단원 7명은 4,000여 가구 규모의 성서주공 1∼3단지 아파트에서 공동체 부활을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무는 작업을 해왔다. 영구임대 저소득 주민이 상당수인 이 곳에서 세대와 이웃 사이의 벽을 허무는 간단치 않은 프로젝트다.

이 사업은 올 초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전국 공모를 하면서 시작됐다. 달서구가 3월 "문화예술 바람으로 생활공동체를 살려보자"며 이를 진행할 지역 문화예술단체를 공모했고, 10개 단체 중 '다(多)컬처이야기'를 제안한 극단 콩나물이 뽑혔다. 주민들이 직접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 편의 연극으로 만들면서 공동체를 부활하자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콩나물이 6월 말 프로젝트 개막식을 할 때만 해도 주민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쓸데 없는 짓 벌이지 마라"며 거부 반응이 만만치 않았다. 그나마 신당복지관과 성서복지관, 신당초ㆍ중, 계명대 연극예술과 등 인근 11개 단체가 도움을 주기로 한 것이 위안이었다.

첫 행사는 지난달 15일 아파트 전역에 바람개비에 소망을 적어 나무에 다는 '물결만들기'였다. 물결처럼 아파트에 변화의 파장을 일으켜보자는 취지였다. 장마철 날씨 변덕이 심했지만 이날은 햇볕도 빗줄기도 자취를 감추고 바람만 쌩쌩 불어 바람개비를 돌리면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

모여든 주민들 손에는 진짜 콩나물이 담긴 비닐봉지가 쥐어졌다. 극단 이름을 각인시키기 위한 아이디어였다. 노인정에 앉아 콩깍지를 따던 할머니들은 "누가 콩나물 나눠 주더노", "콩나물이 콩나물주던데"라며 좋아했다.

이제는 콩나물 단원들도 콘크리트로만 보이던 아파트에서 사람 사는 이야기를 읽어낸다. "이 아파트에는 어린이놀이터가 상당히 많은데도 낮에 아이들을 찾아볼 수가 없어요. 알고보니 경비와 택시운전 등으로 밤낮이 바뀐 채 일하는 분들이 많아 놀이터에서 뛰노는 소리가 수면을 방해하기 때문이었어요." 초창기 주민들의 거부반응도 이런 생활패턴의 연장선에서 이해가 됐다.

두 달 남짓 콩나물이 공감대를 넓혀왔지만 지금까지는 본 행사를 위한 리허설에 불과하다. 앞으로 3개월여 동안 주민들의 이야기를 한 편의 연극으로 무대에 올리는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주민들이 스스로 작가가 되고, 배우가 되며, 분장사도 되는 연극을 만들다 보면 재미는 물론, 공동체의식이 덤으로 따라올 것이라는 판단이다.

주민들 마음을 열기 위해 출발은 가볍게 하기로 했다. 다음달 한 달간 매주 1회 3, 4시간 정도 혈액형으로 본 성격테스트, 관상보기, 그림 이어 그리기 등 흥미 위주로 진행한다.

그러다 10월이면 이웃들의 숨은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마련되고, 그 중 감명 깊은 이야기 한 편이 무대에 오르게 된다. 그래서 11월은 바쁘다. 대본과 배역을 정하고 무대 배경과 음악 등 다양한 장르를 종합한 연극 연습이 아파트 단지 전역에서 이뤄진다. 12월5일 주민들이 배우가 되고, 관객이 되는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것을 끝으로 콩나물의 '다컬처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3단지 주민 김경회(54)씨는 "주민들이 대부분 영세민에다 맞벌이부부여서 자녀 교육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던 차에 극단 小す걋?다양한 문화행사와 생활교육 활동을 벌여 고맙다"며 "주민들이 만들 연극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현재 이 같은 생활문화공동체 사업은 전국 11개 지역에서 연말까지 진행 중이다.

극단 콩나물 정성희(40ㆍ여) 대표는 "이웃과 단절된 대표적 공간인 아파트에서 주민이 서로의 이야기를 감춰두지 말고 연극으로 만들어보면서 공동체를 부활하자는 것이 '다컬처이야기'의 취지"라며 "주민의 뜻대로 만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 글·사진 전준호 기자 jh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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