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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사산된 신' 종교와 정치가 만날때 역사는 피를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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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사산된 신' 종교와 정치가 만날때 역사는 피를 흘렸다

입력
2009.08.31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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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릴라 지음ㆍ마리 오 옮김/바다출판사 발행ㆍ334쪽ㆍ1만7,000원

종교적 열정과 정치 권력이 야합할 때 역사는 피를 흘렸다. 고대의 신권정치와 중세 십자군전쟁, 근년의 이슬람 과격 원리주의 권력과 그에 대항하는 서구 기독교 세력의 충돌도 그 맥락에서 고찰될 수 있다. 20세기 최대의 재앙 히틀러를 구세주로 추앙하며 그의 선동에 신적 위엄을 두르게 한 것도 당대 독일의 기독교 지도자들이었다.

미 컬럼비아대 인문학 교수이자 정치철학자인 마크 릴라는 <사산된 신_종교는 왜 정치를 욕망하는가> 에서 21세기 국제정치 지형이 16세기식 종교 논쟁의 장으로 변질되었다며 "인류는 새로운 형태의 종교전쟁에 휘말릴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는 1,000여 년간의 정교일치 시대가 "종교는 무지와 공포에서 오는 인간적 현상"임을 간파한 <리바이어던> 의 홉스 등 16세기 계몽주의자들에 의해 균열하는 과정, 기독교의 계시를 부인하고 인간의 정신을 강조하며 삶의 윤리 혹은 부르주아의 가치관에 기여하는 인간적 신을 회복하고자 한 루소나 칸트 등의 19세기 자유주의적 시도 등을 다양한 문헌과 자료를 통해 고찰한다.

하지만 자유주의자들의 신학적 기획_ 저자의 표현을 옮기자면 '합리적 희망'_은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무참히 와해된다. "자유주의 신학은 부푼 꿈이 아닌 합리적 희망에서 출발했다. 그 소박한 바람은 성서적 종교의 도덕진리를 근대 정치생활의 실상에 단지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화합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자유주의 신은 궁극적인 진리를 찾는 이들에게 진정한 확신을 심어주지 못한 '사산된 신'임이 드러났다. 바이마르 시대, 사람들에겐 근대 질서 전체의 기반을 흔들 수 있는 새로운 계시에 근거한 보다 튼튼한 신앙에 대한 열망이 너무나 강렬했다. 그것은 구원에 대한 갈증이었다."(306쪽)

메시아주의적ㆍ종말론적 구원의 신이라는 괴물은 그렇게 탄생했다. 1933년 히틀러 집권 전 신교 목사들과 신학자들은 나치 사상을 지지하면서 기독교 교리에서 유대교적 요소를 제거하고 복음을 보다 단정적이고 민족적인 측면에서 해석할 것을 주장했다. 그들은 미래의 독재자를 민족과 인류의 메시아로 추앙했다.

저자의 말처럼, 인간은 확신을 갈망하는 동물이다. 그 확신이 종교적 신념의 고상함과 버무려질 때 확신은 제어장치를 잃고 추하게 일그러진다. 종교는 인간이 저지르는 악행에 대한 가장 확실한 면죄부였다. 이교도에 대한 잔혹한 탄압, 신의 이름으로 자행된 마녀 사냥, 제국주의자들의 노예사냥…, 사생아는 언제 어디서건 잉태될 수 있고, 잉태되고 있다.

저자가 정작 경고하는 바도 바로 오늘의 종교와 정치다. 그는 묻는다. "종교정치의 시대는 끝났다고 하지만 과연 그런가?"9ㆍ11테러와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대응, 잇단 전쟁과 끊이지 않는 테러의 현실을 읽기 전에 종교와 정치의 저 끈질긴 야합과 피의 역사를 먼저 돌아볼 것을 그는 요구하고 있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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