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간에게 유년시절이란 생의 원초적이고 본원적인 시간이다. 그때를 떠올리는 행위는 거울 속의 나, 우물 속의 나를 들여다보는 행위와 같다. 그것은 보고 싶으면서도 정작 다시 마주치기 두려운, 아무것도 덧입지 않은 자신을 만나는 행위다.
김숨(35)씨의 세번째 장편소설이자 첫 성장소설인 <나의 아름다운 죄인들> (문학과지성사 발행). 배경은 산업화에서 소외된 가난한 농촌마을이다. 울산에서 태어난 작가가 초등학교 입학 전 2~3년 동안 할머니 손에서 키워졌던 충남 금산군 추부면의 한 마을이 실제 모델이다. 나의>
주인공은 일곱살 소녀 동화(冬花). 버스를 타고 신작로를 한참 달려야 갈 수 있는 그 마을 사람들은 소녀에게 동심의 원형질을 키워주는 따뜻한 존재로 그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하루 종일 죽어라고 마늘을 까도 할머니한테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고, 일곱까지밖에 셀 줄 모르는' 동화로 하여금 그악스레 '살아낸다'는 것의 의미를 처절하게 실감시켜 주는 존재들이다.
춤바람이 나 아빠를 버리고 떠난 엄마와 대도시에 돈을 벌러 간 아빠 대신 어린 동화를 키워주는 할머니는 "눈초리가 올라간 것이 고 망할 년(엄마)을 쏙 빼닮았구나!" 혹은 "개똥만도 못헌 년!"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다. 적대적인 사람들에 둘러싸여 동화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나는 무서운 게 없어. 나는 독한 년이거든"이라는 소리를 내지르는 일 뿐이다.
마을 사람들은 할머니처럼 모두 심사가 뒤틀려 있거나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 뼈대있는 가문 출신이지만 자식을 낳지 못해 시댁에서 쫓겨난 뒤 구멍가게를 하며 촌로들에게 막걸리를 파는 옥천 할머니, 트럭에 치여 비명횡사한 아들의 보상금으로 금니를 해넣고는 죽은 아들을 산 처녀와 결혼시켜야 한다는 넋두리를 달고 사는 가난한 인자 아줌마, 간질병을 고치기 위해 바퀴벌레를 달여먹고 생닭의 피를 들이킨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는 움막집 장대 아저씨, 하루종일 헤엄을 치고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며 개처럼 몰려다니는 오빠들….
작가가 그리는 소설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는 소녀의 어린 시절을 한 편의 잔혹동화처럼 보이게도 한다. 그러나 '죄인'과 '아름다움'을 연결시킨 역설적인 소설 제목처럼, 작가의 시선은 그 시절 그 공간의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연민을 깔고 있다.
"그들은 진짜 죄인이 아니라, 절망감과 죄책감을 안고 사는 이들이지요. 동화 역시 독기를 품고 있지만 되바라진 요즘 성장소설의 소녀들과는 달라요. 버텨내고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그런 존재일 뿐이지요."
아버지가 자신을 데리러 온다고 했던 백 밤이 훨씬 지나 열여섯 살이 되서야 마을을 떠나게 된 동화가 "나는 그토록 떠나고 싶어했음에도, 막상 마을로부터 멀어지자 두려워졌다. 마을에 뭔가 중요한 걸 남겨두고 떠나온 듯, 불안하기까지 했다"고 하는 장면은 그녀만의 독백이라기보다는, 유년기와의 고별이 한 인간의 생에서 가지는 의미를 인상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유년기를 막연하게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시절로 그려내거나, 왁자지껄한 도시의 학교공간을 무대로 하는 성장소설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요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을 연상시키는 시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문체로 유년시절의 상처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김씨의 이 작품은 한국 소설에서 자신만의 자리를 얻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김씨는 "10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30~40대가 함께 읽을 수 있는 성장소설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난장이가>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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