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말을 알 수 없는 삶, 출구가 보이지 않는 반복적인 일상. 이런 조건 앞에 내던져진 인간들이 허무와 불안을 극복하고‘산다는 것’의 의미를 찾는 방식은 어떤 것일까?
명지현(43)씨의 첫번째 소설집 <이로니, 이디시> (문학동네 발행)에 인상깊게 새겨진 인물들은 이런 불안정하고 공허한 삶의 조건 속에서 생의 의미를 찾아 발버둥치는 이들이다. 세속적 성공이나 물질적 풍요로움 대신 이들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원천은, 악마성까지 엿볼 수 있는 직업적 정열이다. 그 정열은 예술적 정열과 유사하다. 이로니,>
8편의 수록작 가운데 ‘충천(蟲天)’의 주인공은 반딧불이보다 작은 일종의 발광충인 ‘충천’이라는 벌레가 눈에 들어갔다는 망상을 품고 있는 노 도예가.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좀머리멸구, 귀매미, 딱정벌레, 고추잠자리 등 벌레뿐이다. 상업적 가치에 대한 화랑가의 회의에도 불구하고 그는 벌레의 이미지에 몰두한 작품을 쏟아낸다.
도자기를 만들면 만들수록 그의 육체는 쪼그라들지만 충천의 벌레집에서 그가 목격한 벌레들의 비상 장면은 그 어떤 아름다운 도자기도 보여주지 못하는 장엄한 아름다움이었다. “빛이 튀어 나오기 시작했다. 빛 알갱이들이 순식간에 어둠을 지워버렸다… 빛무리는 점점 커지고 점점 두꺼워졌다. 수천 개의 크리스털, 수천 개의 찬란한 빛이 눈앞에 가득했다. 눈이 부셔 시력을 잃을 것만 같았다…”
이러한 장인적 정열은 명씨의 다른 작품 속에서도 다양하게 변용된다. 자신이 만든 음식 맛에 만족하지 못해 끝내 인육에까지 손을 대는 요리사(‘그 속에 든 맛’), 최고급 양복을 만들어주기 위해 육감적인 손길로 동성 연인의 몸을 더듬는 양복점 주인(‘표준 사이즈’)의 행위는 악마에게까지 영혼을 파는 장인들의 예술적 정열의 변주된 형태다.
광고회사 카피라이터, 다큐멘터리 방송작가를 거친 명씨는 2006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는 뛰어난 관찰력과 감칠맛나는 문장은 그의 탄탄한 내공을 짐작케 하는데 충분하다. 표제작은 구한말을 배경으로 몸이 붙어 태어난 샴쌍둥이 자매의 삶을 몸종의 시선으로 포착한 작품이다. 뒤늦게 등단한 명씨가 ‘왜 소설을 쓰느냐, 왜 예술을 하느냐’에 대한 답으로 쓴 소설처럼 보인다.
문재(文才)를 타고나 글쓰기를 즐기는 썅둥이 동생 이디시는 자신의 불행한 운명인 언니 이로니를 향해 저주의 글을 남긴다. “이렇게 쓰는 건 속을 풀어내는 굿 같은 거란다”라는 그녀의 고백에 ‘소설가로서의 존재의미’를 붙들고 있는 작가의 고뇌가 녹아난다.
함께 출간된 명씨의 장편소설 <정크노트> 는 양귀비를 재배하는 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일종의 성장소설이다. 양귀비는 매혹적이면서도 위험한 세상에 대한 은유인데, 그것을 통해 자기 나름의 세계를 구축해가는 소년의 마음의 행로가 흥미롭게 그려져 있다. 정크노트>
이왕구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