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욕(榮辱). 삼성의 지난 10여년 세월에 대한 소회다. 부침 없는 기업이 세상이 어디 있겠는가 마는, 과연 삼성처럼 환희와 좌절을 온 몸으로 겪은 기업이 또 있을까도 싶다.
영광의 시간. 최근 10년간 삼성은 완전히 다른 기업이 됐다. 수직에 가까운 도약이었다. 소니(TV)를 제쳤고 노키아(휴대폰)추격도 시간문제다. 예전에도 삼성은 국내 간판기업이었지만 어디까지나 '로컬 스타'이었을 뿐, 그러나 이젠 명실상부한 '글로벌 챔피언' 이 됐다.
영광 만큼이나 굴곡도 깊었다. 그 중심에 경영권 승계 논란이 있었다. 경영권을 물려주기위한 첫 출발점이 된 1996년 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 이래, 그리고 2000년 이 건으로 이건희 전 회장이 고발된 이래, 삼성은 한시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폭로, 특검, 그리고 이 전 회장의 일선퇴진과 법정출두. 지난 10년 삼성의 경영은 탄탄대로였지만, 경영권 승계는 한걸음도 편히 나아가질 못했다.
돌이켜 보면 확실히 아쉬움은 남는다. 물론 당시엔 그 방법이 최선이라 판단했겠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경영권 승계의 첫 단추를 좀 다르게 풀었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경제부처장관을 지낸 한 인사는 "삼성이 경영승계를 너무 '실무적'으로 풀려고 한데서 문제가 시작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적 특수현실에서 국내 최대그룹이라면 경제외적, 비법률적 요소도 고려했어야 하는데, 지나치게 재무적ㆍ세무적으로 접근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논란도 지난 주 법원판결로 막을 내렸다. 에버랜드 CB발행 이후 13년, 법정소송 9년, 참으로 길고 험했던 공방도 이제 마침표를 찍었다.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의 양형에 대해 못마땅한 쪽도 물론 있겠지만 최종 법적 판단까지 내려진 상황에서, 더 이상의 시비는 소모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런 만큼 이젠 삼성과 이 전 회장을 도덕성의 멍에에서 좀 자유롭게 해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집행유예기간과 벌금액수를 떠나, 지난 10여년간 삼성과 이 전 회장이 치른 비용과 대가도 좀 참작해줘야 할 것이다.
대신 이젠 좀 다른 관점에서 국민들이 삼성을 감시했으면 한다. 경영권 아닌 경영의 관점으로 말이다. 좋든 싫든 한국경제의 미래를 담보한 1등 기업으로서 투자와 기술개발은 잘하는지, 고용은 충분히 하고 있는지, 글로벌 전략에 문제는 없는지, 상생협력에 소홀하지는 않는지…. 이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삼성에 얼마든지 냉정하고 비판적이어도 좋다고 본다.
그리고 하나 더. 이 전 회장에 대해서도 좀 다른 '의무'를 지웠으면 한다. 비록 '전직 회장'신분이고 형사적 굴레에 묶여 있는 처지지만, '원로 없는 한국경제''리더 없는 한국재계'에서 그의 역할은 분명 있다고 본다. 어쨌든 그는 삼성신화를 일군 최고기업인이기 때문이다. 만약 경제현장 혹은 글로벌 무대에서 삼성 아닌 국가봉사의 기회를 찾는다면, 집행유예의 취지에서도 벗어나지 않으리라. 시간이 걸리고 사회적 합의도출도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경제로선 결코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다.
이성철 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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