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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 별세/ 대권 포기 의회 지킨 케네디家 '마지막 황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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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 별세/ 대권 포기 의회 지킨 케네디家 '마지막 황태자'

입력
2009.08.30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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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가의 다른 형들처럼 대통령을 꿈꿨던 고(故) 에드워드 케네디 미 민주당 상원의원은 대통령은 되지 못했지만 46년간 상원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인권과 보건, 외교 부문 등 많은 분야에서 상당한 정치적 족적을 남겼다. 미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상원의원이라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그는 정치 귀족이지만 암살 등 비극을 피하지 못했던 케네디가 형제 중 생존한'마지막 남자'로 더 많이 각인된 인물이다.

케네디 의원은 1962년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재임 기간에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 보궐선거에 당선된 이래 줄곧 상원의원 자리를 지켜온 미 현대 의회사의 산 증인이다. 그는 존과 로버트 두 형이 암살된 뒤 그들의 뛰어난 정치적 능력을 이어받아 1968년에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유력시됐다.

그 해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사한 뒤에도 몇 차례 대통령 후보로 다시 거론됐으나 이런 저런 스캔들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1969년엔 매사추세츠주 채퍼퀴딕섬 다리에서 자동차가 추락, 동승했던 여 보좌관만 숨지고 자신만 탈출하는 바람에 그에게 살인혐의까지 제기되기도 했다. 1980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에게 패했고 1982년에는 84년 대선포기를 선언한 이후 이혼을 강행, 미 국민들을 충격에 빠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상원의원으로서는 왕성한 활동을 펼쳐 미국 내 진보를 상징하는 민주당 거목이 됐다. 케네디 의원은 추구하는 가치가 같으면 많은 정책에서 정적들과도 기꺼이 손을 잡은 초당파적 인물이기도 하다. 공화당 부시 전 대통령의 교육제도 개혁안에 협조했고 존 맥케인 공화당 대선 후보의 이민정책 개혁에 지지를 보냈다. 워싱턴포스트는 "반대자들과 함께 하려는 케네디 의원의 친화성은 그의 입법 활동의 핵심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지난해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후견임을 자임함으로써 오바마가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꺾고 결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는데 큰 힘이 됐다.

그는'내 삶의 존재 이유'라며 건강보험 개혁을 자신의 정치 경력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전 국민이 보험 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었다. 특히 지난해 5월 뇌종양 진단을 받은 뒤에도 병상을 박차고 일어나 의료보험료 삭감에 반대하는 법안에 표를 던져 몇몇 공화당 의원도 동조한 일화는 유명하다. 최근에도 오바마 정부의 건강보험 개혁 입법안의 상원 표결시 '사표(死票)'를 막기 위해 자신의 사망 때 후임자를 신속히 지명토록 매사추세츠 주법 개정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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