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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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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소멸

입력
2009.08.30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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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자동차를 타고

동물원에 가는 일요일처럼

그 차의 경적 위에 앉은 새처럼

하늘은 푸른 색 칸막마다

좀더 위쪽의 신비를 가려놓은

노래는 곧 날아갈 것이다

민첩한 사람들과

점점 느려져가는 사람들이

사라진

막다른 골목길

풍경의 흐릿한 날개를 달고서

녹색 종양이 자라는 팔월의 나무

뱀처럼 길다란 죽음이 나를 감아오르고 있다

길 건너

다리 부러진 피아노처럼

세계가 기울어진다

어둠

유리창 불빛이 레몬처럼 흔들린다

나는 한번도 진실을 말한 적이 없다

그리고

흰 공책 가득 그것들이 쓰여지는 밤이 왔다

● 이 시는 탄생과 삶, 그리고 결국에는 소멸로 들어가는 하루에 대한 기록으로 읽힌다. '민첩한 사람들'과 '점점 느려져 가는 사람들'이 사라진 골목의 '흐릿한 풍경' 안에 들어선 미친듯한 녹음으로 우거진 나무는 종양같고 그 나무를 바라보는 나는 '뱀처럼 길다란 죽음'에 감겨들어 가고 있다.

문득 해가 질 때, 세계는 기울어진다. 마치 '다리 부러진 피아노'처럼. 그리고 찾아오는 어둠. 시인은 말한다. 단 한번도 이 하루 동안, 아니 그 수많은 하루동안 진실을 말한 적이 없다고. 밤에 그러므로 시인은 흰 공책을 꺼낸다. 그 안에다 소위 말하는 '진실'이라는 것을 쓸 것이다.

진실을 말한 적이 없으므로 진실은 쓰여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과연 그런가, 말하여지지 않던 진실이 쓰여지기는 할까? 그 순간 소멸이 온다. 밤에 진실을 흰 공책에다 적는 순간, 순결한 아무 것도 적히지 않은 공책을 펴고 시인이 진실을 기록하는 순간, 소멸은 정말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리고 공책을 덮을 때?, 그때면 새로운 하루가 탄생할까? 진실이라는 거대한 낱말 앞에서 나는 작아진다. 세계를 해독하는 것은 이렇게 불안하고도 불편한 것을.

허수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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