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나뭇잎에 몸을 부빈다
몸을 부빌 때마다 나뭇잎에는 물방물들이 맺힌다
맺힌 물방울들은 후두둑 후둑 제 무게에 겨운 비 듣는 소리를 낸다
안개는, 자신이 지운 모든 것들에게 그렇게 스며들어
물방울을 맺히게 하고 맺힌 물방울들은
이슬처럼, 나뭇잎들의 얼굴을 맑게 씻어준다
안개와
나뭇잎이 연주하는, 그 물방울들의 화음.
강아지가
제 어미의 털 속에 얼굴을 부비듯
무게가
무게에게 몸 포개는, 그 불가항력의
표면장력,
나뭇잎에 물방울이 맺힐 때마다, 제 몸 풀어 자신을 지우는
안개,
그 안개의 입자들
부빈다는 것
이렇게 무게가 무게에게 짐 지우지 않는 것
나무의 그늘이 나무에게 등 기대지 않듯이
그 그늘이 그림자들을 쉬게 하듯이
● 타인의 등에다 얼굴을 부비기, 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했던가. 서로에게 짐주지 않고 가만가만 닿을 듯 말 듯 그렇게 타인에게 느슨하게 나를 기대고 있는 것. 우리들은 안개가 아니라서 '제 몸을 풀어 자신을 지우'지는 못하지만,
타인이 내 무게를 가만가만 받아내는 것을 살풋 느끼는 순간. 내가 마치 그대의 어깨를 가만가만 만져주는 자연의 안개가 된 듯, 어떤 아우라가 된 듯 싶은 순간. 그 순간 나는 갑자기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지고 그러다가 서글프다. 이 순간이 쉽게 달아날 것 같아서.
또한 어느 순간은 내 무게가 그대를 짓누를까봐 겁이 나고 내 존재가 그대를 누를까봐 걱정스럽다. 이렇게 우리는 안개처럼 가볍고 부드럽게 서로에게 흔적을 내지 않으면서도 붙어 있었으면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우리라는 존재는 얼마나 무거운가. 그런 생각이 들 때 안개로 덮힌 인간이 사는 마을을 보면서 이 시를 읽는다, 내 존재는 한없이 가벼워지면서 누군가에게로 스며들어 간다.
허수경ㆍ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