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생선 가운데 가장 맛있는, 아니 가장 영양 많은(?) 고기는 멸치다. 꽁치 갈치 고등어도 있는데? 천만의 말씀. 꽁치 갈치 고등어를 '멸치 크기 만큼' 잘라서 맛을 보았는가. 간단히 말해 '단위 크기나 부피로 보아 맛의 농도'에서 멸치를 따를 수 없다. 같은 이유로 칼슘도 가장 많을 수밖에 없다. 몸집에 비해 뼈가 크고, 경골(硬骨ㆍ딱딱한 뼈) 어류이니 그 효력을 짐작할 수 있겠다. 고등어 정어리처럼 인류가 좋아하는 '등 푸른 고급 생선'의 반열에 있지만 크기 때문에 멸시를 받다 보니 '멸(蔑ㆍ업신여김)어(魚)'라는 문패를 얻게 됐나 보다.
▦수온 20~25도, 난류에 살며, 몸길이는 13㎝를 넘지 못한다. 겨울엔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따뜻한 동남아 남쪽나라로 갔다가, 봄이 되면 한국 일본 중국 등지로 올라온다. 산란기 3~4월, 5~6월 성장기, 7~8월 성숙기를 거친다. 요즘이 멸치의 계절이다. 멸치의 대장은 '죽방'이다. 그냥 많이만 잡으려면 유자망과 정치망이 낫다. 하지만 해파리를 솎아내고 상처 없는 것을 포획하려면 아무래도 V자 그물의 죽방렴이 낫다. 최상품인 '죽방'이 대부분 상처 없는 큰 놈(77㎜ 이상)들을 지칭하지만, 작은 놈이라도 죽방렴에 걸려들면 그렇게 불린다.
▦세계에서 한국인이 가장 많이 먹는 생선이 멸치임이 분명한데 그 놈의 공식 명칭(학명ㆍEngraulis japonikus)에 일본이 자리잡은 게 안타깝다. 사전(Japanese anchovy)의 의미에도 'japon'과 함께 'japan'이 들어가 있다. 서양의 대표적 어업국인 포르투갈 스페인 등에서 생멸치를 소금에 절여(우리의 젓갈) 피자나 스테이크소스로 즐기는 '앤초비(anchovy)'가 나름대로 원조라고 한다. 우리의 고전 <자산어보> 에서 '몃' 혹은 '멸어'로 불렀고, 포르투갈이나 일본에 앞서 중국 고전도 멸치를 가을 생선의 대명사로 '추어(鯫魚)'라고 기록했다는데. 자산어보>
▦이번 휴가에 거제, 통영, 남해, 여수 등에 들러 바다를 본 적이 있는가. 떡시루 같은 사각 나무통을 겹겹이 쌓고 수증기를 뿜으며 배회하는 통통배(?)가 생각날 게다. 성질 급한 그 놈들은 바닷물만 이탈하면 바로 죽어버리기에 즉석에서 삶아(앤초비는 익히지 않음) 해풍에 말리려면 멸치 선단을 뒤따르지 않을 수 없다. 2~3개월 전 동남아에서 잡힌 것들은 멸치 축에 낄 수 없다. 최근 요것들을 값싸게 수입해 국산으로 속여 판, 멸치만도 못한 인간들이 경찰에 구속됐다. 멸치를 사랑하는 사람들(멸사모?)이 아니라도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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