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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1000만 관객' 흥행이 끝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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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1000만 관객' 흥행이 끝나면

입력
2009.08.30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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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계에 모처럼 흥행 쓰나미가 몰려 왔다. 영화 <해운대> 가 1,000만 관객을 넘어 섰다. 한국 영화가 한물 간 것이 아니냐는 비관론이 팽배한 가운데 블록버스터, 그것도 부산을 배경으로 한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홈런을 친 것이다. 몇 년 만의 가뭄에 단비와 같은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한강에 괴물이 나타나더니 부산에 쓰나미라, 발전된 컴퓨터그래픽(CG) 기술로 이제 제주도에 토네이도가 불어 닥치는 영화가 나온들 이상할까. 헐리우드 영화에서 보던 스펙터클이 한반도에 상륙하면서 한국형 블록버스터는 이제 새로운 차원을 맞이하고 있다.

반면 2000년 12월부터 <씨네큐브 광화문> 을 운영해왔던 영화사 백두대간이 8월 31일자로 운영을 중단하게 됐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곳에서 영화를 보고, 그곳에서 관객과 영화 공부를 하고, 감독과 함께 섬세한 핏줄을 해부하듯이 영화를 논하던 곳. 그 소중한 곳이 이제 사라지게 되었다. 문득 백두대간 대표였던 이광모 감독이 빙그레 웃으며 영화를 수입하고 DVD 판권을 팔아도 수익은 고작 몇 백만원도 안 된다며 어깨를 으쓱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처럼 어려운 형편을 무릅쓰고 백두대간은 <안개 속의 풍경> 이나 <나는 영국왕을 섬겼다> 와 같은 좋은 외화 작품을 수입했다.

그런 씨네큐브를 이제는 대기업이 운영하게 됐다고 한다. 이 상징적인 두 사건을 동시에 바라보면서, 한국 영화계에 어떤 불길한 전조(前兆)가 느껴져 걱정스럽기 그지 없다. 대한민국 영토 전체에서 1,000만 관객과 1,000명 관객이 함께 하는 공간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가면 해마다 아카데미 영화상 시상식이 열리는 코닥 극장의 바로 코

앞, 길 건너에 시네마테크가 우뚝 서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메가박스와 씨네큐브가 거리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서 있는 셈이다. 내가 LA 시네마테크를 방문한 날엔 이름도 생소한 영화제가 열려 조그만 독립영화와 애니메이션들을 상영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을까. 한쪽에서는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이 한국 영화를 경이적인 눈길로 쳐다보고, 다른 한 쪽에서는 여유롭고 조용하게 독립영화 필름이 돌아가는 그런 풍경이 연출될 수는 없는 것일까. 그리고 이 두 개의 분리되어 있는 것 같은 진영이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 우리의 정책 담당자들도 알게 될 날이 언젠가 올 수 있을까.

한국 영화계가 침체되어 있는 동안에도 의욕과 패기를 갖춘 신인 감독들은 스릴러나 블랙코미디, 자기 반영적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아우르는 다양한 실험을 했다. 이제 한국 영화는 이러한 자양분을 듬뿍 흡수해 다양한 욕구를 지닌 관객들을 끌어 들이는 새로운 전기를 맞을 것이다. 다시 다가온 1,000만 관객시대. 그 속에서 한국 영화의 숙제를 되짚으며 축복과 기도를 함께 보낸다.

<해운대> 의 흥행 쓰나미가 물러간 뒤에도 여전히 남아 있을 한국 영화계의 당면 과제가 무엇인지, 이제는 정말 제대로 깨닫기 바란다. 어제의 봉준호가 씨네마테크에서 영화에 몰두했고, 미래의 윤제균이 씨네큐브에서 지금도 영화 공부를 하고 있다. 그들에게 한국 영화계와 그를 뒷받침하는 대기업들은 과연 무엇을 줄 것인가. 예술영화 전용관에 대한 지원을 자꾸 줄이는 분들이여, 오늘의 흥행 감독들과 제작사가 하루 아침에 1,000만 관객이 들어오는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란다.

심영섭 영화평론가ㆍ대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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