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 명진(59) 스님은 "중 된 뒤로 한 군데서 1년 넘게 머물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1,000일 기도 회향일(30일)을 엿새 앞둔 24일, 그는 회향의 소회를 묻자 새벽예불부터 동참하는 신도들이 적지 않았다고, 신도들 기대치에 맞추려면 앞으로도 꼼짝없이 조석예불을 해야 할 판이라고, "꽃 피고 새 울던 시절은 가고 이제 늦고생 시작"이라며 아이처럼 툴툴대면서도, 눈으로는 역시 아이처럼 웃었다.
재적 신도 20만명에 살림 규모 국내 최대, 그래서 말 많고 탈 많던 서울 강남 한복판 그 거찰의 주지를 맡은 직후(2006년 12월 5일) 그는 기도 장정을 시작했다. "먼저 신도들의 믿음을 얻고 싶었어요. 불교적 방법으로 택한 게 기도였죠. 절 행정을 맡는 사판승도 출가자인 한 엄격한 자기수행이 전제돼야 합니다."
산문 안에 육신을 가두고 새벽 4시30분 새벽예불, 오전 10시 사시예불, 오후 6시30분 저녁예불하며 하루 1,000배의 절 올리기. 그렇게 1000일을 지내오는 동안 명진 스님은 자신과 함께 사찰 구석구석을 함께 살펴 고칠 수 있었다고 했다.
"절 재산을 공개했고, 매주 종무회의에 스님과 종무원 외에 신도 7명을 동참시켜 재정 운영에 가담토록 했어요." 종무소에 집계되지 않던 불전함 수입_연 12억여원이라고 한다_도 공식화했다. 그랬더니 신도도 늘고 수입도 늘어 취임 첫 해 86억원이던 예산은 지난해 122억원이 됐다. "일요일 법회에 참가하는 신도가 200~300명이었고 법문시간엔 150명 정도였는데, 요즘은 1,000명이 넘어요."
알다시피 그의 1,000일 기도가 무결하진 않다. 5월 29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을 위해 산문을 나섰고, 그 날 사시예불을 걸렀다. 당시의 소회를 밝히던 끝에 그는 현 정부와 권력기관의 행태에 대해 ''양아치' '주구(走狗)' 등 격한 단어들까지 동원하며 거침없이 성토했다.
그러고는 "내가 한 말, 그대로 쓰세요. 그래야 정론이지"라며 기자를 닦달했다. 그는 "부자들 편에 서는 정권도 있고, 서민들을 더 위하는 정권도 있을 수 있죠. 그걸 탓하지는 않습니다. 보수냐 진보냐, 난 중시하지 않아요. 정직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난 중시합니다." 그 기준에 비춰 현 정부는 정직하지 못한 정권이라고 그는 단언했다.
그는 지난 6월 박연차 게이트 수사결과 발표 직후 '중수부 검사들은 봉은사 출입을 삼가라'는 현수막을 걸기도 했다. 보수 성향의 신도들도 많고, 개중에는 '스님이 정치적인 발언만 조금 덜하면 좋겠다'고 말하는 이들도 더러 있다고 한다.
"지난해 종교편향 반대 집회에 불교도 20만명이 모였다고 해요. 당장 내가 손해 보는 일에는 그렇게 모여 목청을 돋우면서 사회적 약자들, 억울한 사람들을 위해 몇 마디 거들면 정치적이라고 하죠. 검찰 플래카드는 그들의 행태에 대한 꾸짖음이고 의지의 표명이고 보살의 길이라 생각합니다."
30일 오전 경내에서 간단한 회향식을 가진 뒤 명진 스님은 용산 참사 유족들을 만나러 갈 참이라고 했다. 그러고는 9월 3일부터 두 달간 강원도 인제의 한 선방에 들어 행을 이어갈 참이라고 했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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