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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家, 대통령 배출·암살… 영욕의 정치名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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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家, 대통령 배출·암살… 영욕의 정치名家

입력
2009.08.30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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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케네디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의 사망으로 '정치 명가'케네디가(家)의 9명 남매 가운데 진 케네디 스미스(여ㆍ81ㆍ전 아일랜드 주재 미국대사) 한 명만이 남게 됐다. 20세기 미국 정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해 왔고 민주당과 진보진영의 기둥 역할을 했던 케네디가 1세대들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는 모습이다.

케네디가의 역사는 약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만장자 사업가이자 영국주재 미국 대사를 지냈던 아버지 조셉 케네디와 어머니 로즈는 1915년부터 1932년까지 아들 4명, 딸 5명을 낳았다. 이들 부부의 꿈대로 아들 중 한 명은 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은 암살 당했고 다른 남매들에게도 화려한 영광은 참담한 비극을 잉태하는 운명이 되풀이되곤 했다.

첫째인 조셉 P 케네디 주니어는 공군 파일럿으로 세계 2차 대전에 참전했다가 29살의 나이에 전사했다. 대통령의 꿈은 자연히 둘째 존 F 케네디에게 이어졌다. 그는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을 거쳐 1960년 미국 35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당시 46세로 미국 역대 최연소였다. 그러나 3년 만에 리 하비 오스왈드에 의해 암살당해 전세계를 충격에 몰아넣었다. 오스왈드의 개인 범행으로 결론났지만 케네디가 베트남전에서 철수하려고 하자 보수파와 군수업체가 암살을 사주했다는 의혹, 적대관계였던 쿠바가 배후라는 의혹 등이 쏟아져 나왔다. 미완의 개혁을 뒤로한 채 떠난 젊은 대통령은 이후'정치적 전설'이 됐다.

이후 9 남매 중 7번째인 로버트가 형을 이어 정계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형이 대통령일 때 법무장관을 지낸 그는 뉴욕주 상원의원을 거쳐 1968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경선에 참여했다. 소외계층에 대한 정책이 호응을 얻었고 형 존에 대한 국민들의 그리움까지 작용, 폭발적 지지를 받았던 로버트는 캘리포니아주 민주당 예비선거 승리 후 LA에서 시르한 비샤라 시르한에게 암살당했다. 이 암살 또한 수많은 의혹을 남겼다. 막내였던 에드워드 상원의원도 대권의 꿈이 있었으나 결국 이루지 못했고 이로써 케네디가의 꿈은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비극으로 남게 됐다.

케네디가 자매들은 사회복지활동과 외교 분야에서 족적을 남겼다. 9명 중 다섯번째인 유니스는 1968년 정신지체 장애인을 위한 특별 올림픽을 창시했고, 평생을 사회봉사활동에 바쳤다. 생존해 있는 진은 주아일랜드 대사로 일하며 북아일랜드 평화협정 체결을 도왔다. 그러나 둘째이자 큰 딸인 로즈마리가 평생 지체장애를 앓았고, 셋째 캐서린은 비행기 사고로 28살에 숨지는 등 자매들에게도 비극은 비껴가지 않았다.

1세대들은 떠나가지만 케네디가 2세대들에 대한 미 국민들의 관심은 여전히 높다. 존 F 케네디 주니어가 1999년 38살에 비행기 사고로 사망, 2세대들에게도 비극은 일찍 찾아왔다. 케네디가의 꿈은 연방 하원의원인 에드워드의 아들 패트릭 J 케네디(41), 빌 클린턴 정부에서 법무부 차관보로 일한 로버트의 장녀 캐슬린 타운센드(57) 등이 이어가고 있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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