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말의 여성 환자가 놀란 표정으로 갑자기 외래를 찾아 왔다. 암은 완치되었지만 후유증으로 상담과 약물치료를 받던 환자다. 치료 받은 부위에 작은 종기가 생겨서 수술을 담당했던 의사가 조직검사를 하자고 했다는 것이다. 환자는 암이 재발한 것이 아닌지 초조해 했다. 몇 가지 더 자세하게 물어 보고 의무기록을 살핀 뒤 일단 "경과상 이상이 없었고 조직검사가 반드시 재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켰다. 환자는 마음이 편해졌고 1주일 뒤 단순 염증반응으로 판명되었다.
암 치료 뒤 재발되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 있는 환자를 '암 생존자'라고 부른다. 전쟁이나 재난 혹은 큰 사고에서 살아남은 사람을 생존자라고 하듯이, 암과의 전쟁 이겨냈다는 뜻으로 쓰인다. 과거에는 '암은 곧 죽음'이라는 인식이 강했으나 최근 암 치료기술의 발전으로 암 환자 절반이 완치가 가능하며, 조기 발견하면 80~90% 치료가 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약 60만 명이 생존해 있으며, 2015년에는 110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이 환자의 경우에는 다행이었으나, 재발이나 2차 암에 대한 두려움은 모든 생존자들이 겪는 문제이다. 2차 암이란 암 치료 후에 다른 부위에 새롭게 발생한 암을 말한다. 흡연 경력의 암 환자 혹은 비만이나 당뇨를 가졌던 암 환자의 경우 2차 암 발생위험이 더 높기 때문에 철저한 건강관리와 2차 암 검진이 필요하다.
환자들은 통증과 같이 몸에 조금만 이상이 있어도 암이 재발한 것이 아닌지 불안하다. 그래서 이런 저런 검사를 받는다.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말에도 불안은 가시지 않는다. 다른 정밀검사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전전긍긍해 한다. 암이 한번 걸린 것도 서러운데, 새로운 암의 위협은 암 생존자들을 슬프게 한다.
암 치료 후에도 많은 환자들이 통증을 호소한다. 그러나 어떤 의사나 가족은 통증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죽다가 살아났는데 그 정도 통증은 참을 수 있지 않나?' 통증은 충분히 조절할 수 있는 데도 잘못된 지식 때문에 그냥 참는다. 슬픈 현실이다. 만성피로 문제는 더 간과하기 쉽다. 몹시 피곤하고 기력이 없는 암 환자의 피로는 방사선 치료, 항암 화학요법 치료 등을 받는 환자의 90%에서 나타난다.
치료를 끝낸 뒤에도 절반은 피로를 경험한다. 일반적인 피로는 휴식을 취하면 대부분 회복이 되는 반면, 암으로 인한 피로는 휴식을 해도 사라지지 않고 일상생활을 방해한다. 가족들은 치료가 끝났는데 왜 그렇게 무력한지 이해하지 못한다. 가족회의를 열어 이해를 시키고 협조를 당부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암과 관련된 어떤 증상보다 피로는 고통스럽고 암 생존자들을 슬프게 한다.
통증과 피로, 재발에 대한 불안감 이외에도 신체 이미지의 변화, 치료비 부담과 직업상실에 따른 경제적 위기들은 암 생존자들을 더욱 슬프게 한다. 이런 고통은 의사는 물론이고 심지어 가족도 모른다. 의사에게 말하면 귀찮게 여길까 봐, 또 그 동안 고생한 가족을 더욱 힘들게 할까 염려한 나머지 혼자서 고통과 슬픔을 간직한다. 미국 영국 일본 등은 이런 암
생존자들의 고통을 돌보는 정책적 지원과 복지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우리도 암 생존자들이 슬픔을 극복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사회와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과 제도 도입을 서둘러야 할 때이다.
윤영호 국립암센터 책임연구원 · 가정의학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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