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희 국방부 장관이 '청와대 항의 서한'이라는 강수를 둔 것은 국가 안보보다 경제 논리가 우선시돼서는 안된다는 국방부의 정서를 대변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대로 둘 경우 군 내부의 동요와 반발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번 파문의 도화선이 된 사안은 내년 국방 예산안으로 파악되고 있다. 국방부는 지난 7월 올해 대비 7.9% 늘어난 30조7,817억원의 내년 예산을 요구했다. 그러나 청와대측에서는 인상폭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거부감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진다.
청와대는 경상운영비와 관련해서는 장병들의 복지증진과 복무여건 개선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예산 요구안을 삭감하고, 무기도입 예산 역시 대폭 줄일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항간에는 청와대가 "리베이트만 근절해도 국방 예산을 대폭 줄일 수 있다"며 강한 불신감을 드러냈다는 말도 들린다.
이 같은 청와대의 의지가 장수만 국방부 차관에게 전달되자 장 차관은 예산 요구안을 다시 만들어 이달 초 청와대에 보고했다. 이에 따라 7.9% 증액이 3.4% 증액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통상적으로 부처별 예산 요구안이 부처 협의를 거치면서 다소 감액되기는 하지만 이처럼 대폭 삭감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특히 이를 주도한 장 차관이 이 장관에게 사전에 보고하지 않아 이 장관이 격노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이는 이번 파문의 기화로 작용했을 뿐, 현 정부 들어 '경제와 안보'의 불안한 동거가 이어져 왔다는 점에서 갈등은 항상 잠복해 왔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2020년까지의 국방개혁 청사진을 담은 '국방개혁기본계획'(국방개혁2020)의 수정안 마련 과정에서도 비슷한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5년 참여정부에서 마련된 이 계획은 당초 2020년까지 621조원을 투입키로 했다가 지난 6월 말 수정안에서 599조원으로 예산 규모가 줄었다. 이에 따라 상당수 전력 증강 계획이 순연되거나 축소됐다. 만일 내년 예산안이 3% 대 증가에 그칠 경우 국방개혁기본계획에도 상당한 차질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이 계획에는 2020년까지의 연 평균 예산 증가율을 7.6%로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은 앞서 '제2롯데월드 신축 논란' 과정에서도 경제 논리에 밀려 국가 안보를 소홀히 한다는 비판에 휩싸인 바 있다. 장 차관 취임 이후 이뤄진 파격적인 군 성과급제 도입 등 효율성을 내세운 조직 수술 과정에서도 군 내부의 반발이 적지 않았다. 결국 지난해 3월 취임해 장수한 편에 드는 이 장관이 개각을 앞둔 시기에 마지막으로 군을 위해 힘든 역할을 자청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앞으로 군 내부의 반발이 이어질지 주목된다. 이 장관이 편지 문안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주변의 목소리가 당초에는 훨씬 강경하게 반영됐었다는 후문이 들리는 점도 파장이 심상치 않을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진성훈 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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