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검역소도, 보건소도 '나 몰라라'였어요."
지난 주 극심한 신종플루 증세를 겪다 조금씩 회복중인 교사 A씨는 보건당국의 안일한 대응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떨린다며 말했다. 함께 합숙하던 연수생들이 신종플루에 집단 감염됐고 A씨도 뒤늦게 고열 등 증세가 나타났는데도, 관계자들은 모호한 기준을 들먹이며 검사조차 하지 않은 채 "더 아프면 오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지난 14일 A씨가 합숙 연수 중이던 경기지역 한 연수원에서 연수생들이 무더기로 고열 등을 호소, 신종플루 집단 감염이 의심됐다. 연수생 일부가 검사를 받았으나 A씨는 다행히 뚜렷한 증상이 없어 이튿날 퇴소했다. 미리 계획한 홍콩 여행을 갈 수 있을지 걱정했던 A씨는 "이상 징후가 없으니 상관 없다"는 보건소 측 설명을 듣고 16일 홍콩으로 떠났다.
하지만 이날 저녁 홍콩 숙소에 도착한 A씨는 37도를 넘는 고열 증상이 나타났다. 더구나 동료 연수생들이 1차 검사결과 신종플루 양성판정을 받았고 다른 연수생들도 추가로 같은 증상을 호소하고 있다는 소식도 접했다.
자신도 신종플루에 감염됐다고 판단한 A씨는 이튿날 급히 귀국길에 올랐다. 특히 15, 16일 국내에서 신종플루로 인한 사망자가 잇따라 나온 터여서 잔뜩 겁을 먹은 A씨는 하루 빨리 당국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17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A씨는 관계 당국의 허술한 대응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공항 입국심사 검역소에서 A씨는 전후 사정을 설명하며 증상을 호소했으나, 체온이 기준치(37.8도)보다 낮은 37.6도라는 이유로 "집에 가도 된다"는 말만 들었다. 아무래도 미심쩍어 다시 공항 질병관리 민원실을 찾았지만 대답은 똑같았다.
"37.8도에 미달하니까, 더 아프면 내일 보건소에 가 보라"는 것이었다. A씨는 "신종플루가 확실한 것 같은데, 내 치료는 둘째치고 그냥 지하철 타고 막 다녀도 되냐"고 따졌지만, 직원은"어쩔 수 없다. 지금은 의사도 (퇴근하고) 없으니까 일단 집에 돌아가라"고 말했다.
A씨는 "정황상 내가 신종플루 집단 감염자 중 한 명이 분명했기 때문에 귀국하면 곧바로 조치가 이뤄질 줄 알았는데, 마스크 하나 제공받지 못해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A씨는 이날 밤부터 열이 더욱 심해지자 이튿날 서둘러 서울 D보건소에 들렀다.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동료 연수생들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호소해도, 체온이 37.4도여서 검사도 약도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A씨는 결국 화를 내며 "아파 죽겠으니 그냥 달라"고 언성을 높인 끝에서야 신종플루 치료약인 타미플루 10알(5일치 복용량)을 받을 수 있었다.
약 처방 이후에도 관리는 뒷전이었다. 보건소 측은 A씨에게 바깥 출입을 자제하는 '자가격리' 의무를 지킬 것을 요구했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매일 전화를 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A씨는 23일까지 보건당국으로부터 전화 한 통 받은 일이 없다고 했다. A씨는 "정부가 환자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를 포기한 채 이젠 각자 알아서 하라는 것 같다"며 씁쓸해 했다.
강지원 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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