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가 스코틀랜드 당국을 독려해 리비아 정보요원이었던 '로커비 테러범'압둘 바셋 알리 알 메그라히(57)를 석방하도록 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영-리비아간 뒷거래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석방 이후 미국의 반발이 이어지는 한편,'메그라히가 진범인가'에 대한 논쟁도 다시 불붙고 있다.
리비아 국가원수 무아마르 카다피는 20일 리비아로 돌아온 메그라히와 그의 가족을 만난 자리에서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와 엘리자베스 여왕이 스코틀랜드 당국에 메그라히의 석방을 독려 한데 대해 감사하다"고 말했다고 리비아 뉴스통신 자나(JANA)가 22일 보도했다. 카다피는 "메그라히의 석방으로 양국 간 모든 분야의 협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카다피의 아들인 사이프 알 이슬람 카다피도 리비아TV와 인터뷰에서 "영국과의 석유, 가스개발 협상에서 메그라히 송환문제가 항상 테이블 위에 있었다"고 말했다. 메그라히가 말기암 상태인 점을 감안해 '인도적 결정'을 내렸다는 스코틀랜드 정부의 발표내용을 뒤집고, 영국과의 뒷거래를 사실상 인정한 것이다.
리비아는 세계 8위 석유매장량(약 420억 배럴)을 가지고 있고, 2003년 유엔의 경제제재가 해제된 후 각국 업체들의 유전 개발권 취득경쟁이 치열하다. 이에 대해 영국 외교부 대변인은 "메그라히 석방문제는 전적으로 스코틀랜드 당국이 알아서 했다"며 "영국과 리비아 간에 어떤 거래도 없었다"며 즉각 부인하고 나섰다.
미국은 연일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다. 23일 로버트 뮬러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메그라히를 석방한 케니 매카스킬 스코틀랜드 법무장관에게 항의서한을 보내 "법을 조롱하고 전세계 테러리스트들에게 안식처를 준 처사"라며 강력히 비난했다. 뮬러 국장은 1988년 미국 팬암 103기가 스코틀랜드 로커비 마을 상공에서 폭발한'로커비 테러'가 발생했을 때 법무부 검사로서 수사를 지휘했었다.
영국신문 인디펜던트는 메그라히 석방문제 이면에는 기본적으로'메그라히가 진범인가'에 대한 영국과 미국의 상반된 시각이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폭탄을 감싸고 있던 셔츠를 메그라히에게 팔았다는 증인이 "23차례 조사를 받으면서 진술을 강요당했고, 미 정부에서 2만 달러를 받았다"는 내용이 영국언론을 통해 보도돼왔고, 미국과 달리 영국에서는 로커비 테러 희생자 가족들 조차 "메그라히가 범인이 아닌 것 같다"며 그의 석방을 지지하고 있다. 메그라히는 더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죽기 전에 무죄를 입증한 증거를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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