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북측 조문단의 청와대 예방 요청을 받은 뒤 하루 늦춰 23일 접견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굳이 하루를 미뤄 다음날 만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는 게 정부측에서 나오는 얘기들이다.
정부는 우선 외교 의전상의 이유를 거론한다. 북측 조문단은 서울 도착 첫날인 21일 청와대를 예방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북으로 떠나기 불과 5~6간 전인 22일 오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메시지가 있으니 이 대통령을 예방하고 싶다"고 우리 측에 알렸다.
이날 아침 김덕룡 대통령국민통합특보 등과 조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 간접적으로 이 대통령 예방 의사를 전달한 데 이어 이날 10시 현인택 통일부장관과 만나 청와대 예방을 정식으로 요청했다. 더구나 연안호 석방을 위한 당국간 대화 제의는 무시하면서 김대중평화센터를 통해 조문 통보를 해온 북측이 갑작스레 대통령 접견을 요청한 것은 외교 관행에 어긋난다는 게 정부측 설명이다.
그렇다고 면담 요청을 거절할 수는 없다. 결국 청와대는 북측과의 대화를 거부하지 않되, 외국 조문단들의 청와대 예방 시점에 맞춰 북한 조문단을 만나기로 가닥을 잡았다.
여기에는 최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 당시, 다섯 차례나 귀환 일정을 연기하면서 김 위원장을 만난 점도 감안됐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남북간 기싸움'이 벌어진 것 아니냐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또 조문단의 방문 자체를 반대하는 국내 보수세력의 비판도 의식했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하루 연기'의 진짜 속내를 보면 북한 의도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우리 정부의 전략적 고려가 작용했다는 해석이 많다. 북측이 조문 등을 계기로 유화공세를 펴면서 대내외적인 선전에 나서고 있다는 게 정부측의 판단이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움직임을 희석하기 위한 분위기 조성 차원에서 잇단 유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북측의 의도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바로 조문단을 응대하기보다는 숨을 고르면서 대북정책을 점검한 뒤 접견에 나섰다는 것이다. 정부관계자들은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외교적 결례를 감수하면서까지 북측의 요청을 곧바로 받아줄 필요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과거처럼 북측에서 왔다고 무조건 칙사대접을 하는 게 아니라 국제적 상식에 맞게 응대하자는 패러다임 쉬프트(변화)"라고 말했다.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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