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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리포트] 오바마 정권 야심찬 건보개혁, 인종·이념갈등의 늪서 허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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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리포트] 오바마 정권 야심찬 건보개혁, 인종·이념갈등의 늪서 허우적

입력
2009.08.24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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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달 초 미 로스앤젤레스 인근에서는 보험이 없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료진료를 해주는 행사가 열렸다. 혈압, 유방암, 치아 등을 치료 받기 위해 몰려든 수천명의 사람들로 행사가 열린 체육관 주변은 장사진을 이뤘다. 전날 저녁부터 길게 늘어선 줄이 체육관을 겹겹이 감쌌고, 이 때문에 수백, 수천km를 달려오고도 발길을 돌린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행사를 주최한 의료단체는 "1985년 무료진료를 시작한 이래 올해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고 말했다. 주 대상은 무보험자였지만 보험이 있어도 개인 부담액이 너무 많아 사실상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상당수였다.

#2 2007년 캐나다 신문에는 '모험심 많은 미국의 52세 여성이 캐나다 밴쿠버에 사는 남성을 원한다'는 구혼광고가 실렸다. 이 여성은 남자가 대머리라도 괜찮다고 했다. 광고를 낸 이유는 의료에 관한한 모든 것을 국가가 책임지는 캐나다의 의료복지 때문. 밴쿠버에서 차로 3시간 거리인 시애틀에 사는 이 여성은 암 진단을 받은 이후 엄청난 의료비 때문에 파산 직전에 몰려 캐나다 남성과의 결혼을 유일한 탈출구로 생각했다.

세계 초강국인 미국 의료시스템 단면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미국과 국경을 접한 멕시코에는 미국인 환자를 상대로 하는 병원과 약국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 여행사들은 다른 나라에서 치료를 받도록 해주는 '의료 관광'까지 등장시켰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정권의 명운을 걸다시피 하며 건강보험 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미국의 의료시스템이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는 한계점에 왔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의 건보개혁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야당인 공화당이 맹렬히 반대하고 있고, 여론도 비호의적이다.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돈 문제다. 10년 간 1조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재원이 필요한데, 지금의 경제위기에서는 어림도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정부가 주도하는 공공보험에 대한 반감이다.

미 국민들은 정부의 권한이 세지는 것에 생리적 거부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공화당이 "정부가 환자의 삶과 죽음을 결정할 것"이라는 '죽음의 위원회' 주장을 들고 나오는 것은 이런 정서를 노린 것이다.

국론분열에 가까운 미 건보개혁 논란에는 인종적, 이념적 갈등도 작용하고 있다. 3억명의 미국인 가운데 무보험자 4,500만명은 상대적 소수이고 무보험자 중 불법 체류자들도 상당수이다. 보험을 갖고 있는 미국민들은 자신들의 세금으로 이들에게 보험혜택이 돌아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건보개혁은 의료문제에 그치지 않는 '사회개혁'이라는 말도 나온다. 낙태를 보험대상에 포함시키느냐 하는 것도 의료보다는 이념의 문제에 가깝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런 정서를 건드리지 않는 방식의 건보개혁 타협안을 찾고 있는 듯한데, 그렇다면 '무늬뿐인 개혁'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워싱턴=황유석 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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