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파트 주민들이 '해운대' 찍은 영화사에 소송까지 걸라고 했다카대." "진짜가? 와?" "(영화에) 쓰나미에 쓰러지는 아파트로 나오니까 집값 떨어진다고. 근데 영화 잘 나가니까 오히려 홍보가 돼 집값이 올랐다 아이가. 그라니까 소송 얘기가 쏙 들어갔다 카더라."
22일 저녁 영화 '해운대'를 상영중인 부산의 CGV센텀시티 4관 앞. 상영시각을 기다리던 시민들은 영화를 보기 전부터 '해운대' 뒷얘기에 여념이 없었다. "줄거리는 하도 많이 들어서 다 안다"는 한 관람객은 "우리 동네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려고 왔다"며 상기된 표정이었다. 친구와 함께 온 최원석(34)씨도 자랑하듯 끼어들었다.
"쓰나미로 유리벽이 깨지면서 상어가 튀어나오는 장면 있지예. 그거 제가 일하는 부산아쿠리움에서 찍었다 아입니꺼." 그는 "사장님이 마케팅에 활용할 방안을 생각해 보라고 돈까지 주면서 영화를 보라고 했다"며 슬쩍 웃었다.
부산이 들썩하자 전국이 술렁이고 있다. 부산 해운대를 덮치는 대형 쓰나미를 다룬 재난영화 '해운대'는 부산을 중심으로 한 흥행 돌풍이 전국을 덮친, 그야말로 '부산발(發) 쓰나미'가 됐다. 프로야구 판을 뒤흔들던 '부산의 힘'이 또다시 기염을 토하면서 "서울 중심에 도전하는 지역문화의 반란"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해운대'의 관객수가 개봉 한 달만인 23일 마침내 1,000만명을 돌파했다. 한국 영화로는 다섯번째이자 2006년 '괴물' 이후 3년만의 1,000만 영화 탄생이다. 국내 첫 재난 블록버스터 등 흥행 요소를 갖추긴 했지만, 지역적 한계 등으로 제작사 스스로 "700만명이면 성공"이라고 예상했던 것을 감안하면 이변이다.
'부산 쓰나미'를 '전국 쓰나미'로 바꾼 힘은 부산 시민들에게서 나왔다. 부산에서 촬영했다는 것 말고도 걸쭉한 사투리, 롯데자이언츠 응원단 풍경, 시원(C1)소주 등 부산의 상징들이 맛깔스럽게 버무려져 '부산 애향심'은 예고됐던 일.
그러나 부산의 응집은 기대 이상이었다. 영화 흥행의 키를 쥔 개봉 1~2주차 부산 지역의 좌석 점유율은 70.7%로 서울(51.2%)을 압도하며 초반 돌풍을 이끌었다. 이상조 부산영상위원회 사무처장은 "좌석점유율이 평일을 포함 70%를 넘었다는 건 엄청난 기록"이라며 "평생 영화 한 편 보지 않다가 '해운대'를 본 부산사람도 꽤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극장 앞에서 만난 대학원생 정현규(24)씨는 "프로야구 응원에서처럼 부산 사람들은 하나의 공통 분모가 있으면 연대감을 느끼는 수준이 다른 곳보다 훨씬 높은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직벌 '부산 갈매기'들의 열정적 응원으로 인해 '롯데 성적이 전체 프로야구 흥행을 좌우한다'는 얘기가 이제 영화판으로도 옮겨오는 상황이다.
전국을 들썩이게 하는 부산의 응집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부산 시민들은 인구 350만이란 제2도시의 자존심부터 꼽는다. 부산영상위원장인 박광수 감독은 "부산 국제 영화제 이후 부산시민들은 영화에서 문화적 자부심을 되찾았다"며 "해운대 촬영 때 광안대교를 6시간이나 막았는데, 서울 같으면 항의가 빗발쳤겠지만 부산시민은 달랐다"고 말했다.
부산 정서가 얼핏 지역색이 짙어 보이지만, 지역을 아우르는 서민 정서를 꼽는 이도 많다. 해운대구청의 영화지원사업 담당 이삼례씨는 "부산은 서민계층이 매우 두터운데, 큰 돈이 들지 않는 영화나 야구 같은 취미를 향유함으로써 일체감을 느끼는 것 같다"며 "영화 해운대도 서민들 이야기이기 때문에 다른 지역도 쉽게 공감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상모 CJ 부장은 "부산 시민들이 애향심이 높지만, 배타성이 없다는 점도 눈여겨 봐야 한다"며 "그 때문에 다른 지역 사람들과의 공감대도 쉽게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할리우드 재난영화와는 차별화 한 '해운대'의 묘미로 주목 받았던 잔잔한 에피소드들의 진짜 주인공들은 영화 흥행이 그리 달갑지 않은 표정이다.
영화에서 주인공 하지원이 장사를 하던 해운대의 작은 포구인 미포항. 횟집을 운영하는 60, 70대 할머니들은 "여기 있는 사람들은 영화 본 사람 하나도 없다"며 연신 투덜댔다. 한 할머니는 "(영화가 흥행해도) 장사에 하나도 도움 안 된다카이. 만날 젊은 놈들만 와서 '여기가 거기 맞지예' 물어보고만 보고…(회는 안 먹고 간다)"라고 푸념했다.
밀려든 바닷물 속에서 설경구와 하지원, 송재호의 운명이 갈리는 장면을 촬영한 해운대 재리시장 입구엔 '영화 해운대 촬영지'라는 커다란 현수막이 내걸려 있지만, 이곳에서도 영화를 봤다는 상인은 만나지 못했다. 시장 입구에서 과일을 파는 백외술(47ㆍ여)씨는 "먹고 살기 바빠서 우째 가겠노. 저녁 9시나 돼야 일이 겨우 끝나는ⅰ?라고 말했다.
더욱이 대한민국 대표 휴가지 해운대 해수욕장은 영화 '해운대' 돌풍에도 불구하고 긴 장마와 이상저온으로 입장객이 크게 줄어 올해 가장 썰렁한 여름을 보내야 했다. 해운대구청에 따르면 22일까지 입장객 수는 953만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 입장객수 1,275만명에 비해 25% 가량 줄었다.
부산= 문준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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