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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빈곤론' 가난과 맞선 '도덕적 마르크스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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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빈곤론' 가난과 맞선 '도덕적 마르크스주의자'

입력
2009.08.23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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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카미 하지메 지음ㆍ송태욱 옮김/꾸리에 발행ㆍ255쪽ㆍ1만5,000원

가와카미 하지메(河上肇ㆍ1879∼1946)는 20세기 초 일본 교토대 경제학부의 상징적인 존재였다. 그의 집 근처를 지나면서 모자를 벗고 경의를 표하는 학생들을 보며 경제학부의 가와카미인지, 가와카미의 경제학부인지 알 수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삶과 사유를 일치시키려 한 그의 생애에는 시대의 영광과 좌절이 함께 하고 있다.

<빈곤론> 은 그가 교토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1916년 오사카 아사히신문에 연재한 글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사람들이 왜 가난하고, 가난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그의 생각들을 모았다.

부자들의 수요가 사치품에 몰리고 생산자들은 그에 맞춰 사치품을 만드느라 생활필수품을 생산하지 않아 가난한 사람이 생긴다는 게 그가 지목하는 빈곤의 원인이다. 따라서 가난을 해소하려면 부자들이 사치스러운 생활을 중단하고 필수품이 가난한 사람에게 돌아가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이 나올 당시 일본은 제1차 세계대전 참전으로 한편에서는 벼락부자가 속출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물가가 폭등해 사회적 불만이 고조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빈곤 문제를 고민하는 이 책이 나오자 대중은 열렬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유물사관의 관점을 유지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도덕에만 매달린다는 비판도 함께 제기됐다. 그러자 가와카미는 그 비판을 수용하고 책의 절판을 요구했다. 저자도 인정했듯 이 책은 한계가 분명하다. 부자의 사치 근절로 빈곤을 막을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지나치게 순진할 뿐 아니라 현실적 해결 방안으로 이어지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곤론> 에는 가난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과 함께, 그 가난과 맞서 싸우려는 그의 열정과 신념이 들어있다. 가난에 대한 가와카미의 태도는 1901년 겨울 대학생 신분으로 한 모임에 참가했다가 옷을 벗어준 일화에서도 확인된다. 마침 그 모임에서 모금 바구니가 돌았는데 돈이 없던 그는 외투, 상의, 목도리 등을 다 벗어주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랐는지 그는 다음날 입고 있는 옷만 빼고 집에 있던 옷을 모두 그 모임에 기부했다고 한다.

가와카미는 개인의 도덕성을 평생 잊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빈곤론> 에 제기된 비판을 수용하고 마르크스 이론을 공부하면서 과학적 사회주의를 향해 나아갔다. 정부는 그런 그를 대학에서 쫓아냈고 대학에서 나온 그는, 전편이 강조한 도덕성에 마르크스주의를 더해 <빈곤론2> 를 썼다.

사상범을 단속하던 특고경찰에 검거돼 3년 9개월의 형기를 마치고 출옥한 그는 "투쟁 현장 뒤로 물러난 일개 노병에 불과한 나는 그저 인류 진보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사회 한 구석에서 조용히 숨을 쉬고 싶을 따름"이라며 칩거하면서 자서전 집필과 <자본론> 번역에 매진하다 1946년 1월 영양실조에 급성폐렴이 겹쳐 세상을 떠났다.

박광희 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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