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은 있지만 갈등은 없다. (정부와) 아주 협조가 잘 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측 최경환 비서관은 21일 국장 준비 과정에서 정부와 갈등이 있지 않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최 비서관의 호언대로 정부와 유족측은 양보와 상생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광장 차벽 봉쇄 등 갈등이 분출됐던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당시와는 대비된다.
타협의 첫 작품은 장례의 격이었다. 당초 고인에 대해 최고의 예우를 바란 유족측과 전직 대통령과의 형평성 등을 고려한 정부는 장례 형식을 두고 줄다리기를 벌였다. 양측은 물밑 접촉 끝에 '국장으로 치르되 6일장'이라는 절충안을 이끌어 냈다. 양보를 통해 갈등의 불씨를 사전에 진화한 것이다.
한나라당도 민주당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소요사태 우려'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안상수 원내대표는 이날 주요당직자회의에 앞서 고인을 위한 묵념을 제안했다. 김성조 정책위의장은 이 회의에서 "(고인은) 먼 길을 떠나시면서 북한 조문단이라는 선물이자 숙제를 남겨주셨다"고 말했다.
미디어법 강행처리 이후 민주당의 성토 대상이던 김형오 국회의장도 갈등 해소에 앞장 섰다. 국회에 빈소를 마련한 데 이어 21일 민주당 기독신우회가 진행한 추모예배에 참석했다. 미디어법이 처리된 지난달 22일 이후 민주당이 주도한 행사에 참석한 것은 처음이다.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20일 민주당이 대형전광판을 통해 방영하려 한 동영상이 발단이었다. "독재자에게 고개 숙이고 아부하지 말자"는 김 전 대통령의 발언이 담긴 동영상이었다.
행정안전부가 상영금지 입장을 전달하자 민주당은 "사후(死後) 검열행위냐"며 반발했다. 자칫 화합 모드에 금이 갈 뻔했지만 "빈소에서만큼은 마찰이 없어야 한다"는 유족측 입장에 따라 민주당이 한발 물러섰다.
갈등 잠재우기에는 이달곤 행안부 장관과 민주당 박지원 의원의 핫라인이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평가다. 양측은 김 전 대통령 서거 당일부터 세 차례 접촉해 '6일 국장'을 이끌어냈다. 21일 이대통령을 수행해 국회에 온 이 장관은 박 의원의 손을 잡고 "언제든지 불편한 게 있으면 말씀하시라"고 말했다.
빈소 추모곡 역시 노 전 대통령 서거 때와는 다르다. 봉하 마을의 주요 추모곡은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 '임을 위한 행진곡' 등 민중가요였다. 반면 국회 김 전 대통령 빈소에서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 '그리운 금강산' 등 통일 염원을 담은 잔잔한 가곡을 들려주면서 차분한 분위기를 유도하고 있다.
장재용 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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