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기차역으로 지어진 미국 디트로이트의 미시건 중앙역. 대리석과 샹들리에가 장식하고 있던 이곳은 이제 허물어져 낙서만 가득한 폐허가 되었다. 자동차산업의 중심지로서 구가했던 도시의 번영과 오늘날의 쇠락을 동시에 보여주는 이 커다란 공간을 나신의 한 여인이 올려다보고 있다.
서울 신사동 갤러리현대 강남점에서 25일 개막하는 젊은 사진작가 김미루(28)씨의 개인전 '나도(裸都)의 우수(憂愁)'에서 만날 수 있는 첫번째 사진이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그는 폐쇄된 지하철 역사, 터널, 하수도, 지하묘지, 공장, 조선소 등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도시의 숨겨진 공간으로 옷을 벗은 채 들어가 스산한 풍경과 자신의 모습을 함께 카메라에 담는다.
삼각대를 설치하고 타이머를 작동시키는 방식으로 작업하는데, 때로는 친구가 셔터를 눌러주기도 한다. 친구란, 도시 속 출입금지 지역을 찾아다녀 '도시 탐험가(urban explorer)'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그의 작업은 상당한 위험을 동반한다. 울타리에 구멍을 뚫고 프랑스 생자크탑 꼭대기에 올라갔고, 비밀 출입구를 통해 프랑스의 지하묘지 납골당에 들어가 유골 위에 몸을 눕혔다. 도시의 화려한 불빛을 내려다보는 맨해튼 다리의 케이블 위에 올라가 있는 사진은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김씨는 "키우던 애완용 쥐가 죽은 후 도시 속에서 더럽고 무시당하는 쥐 같은 존재를 찾아다니다가 지하공간에 관심을 두게 됐다"면서 "도시의 피부뿐 아니라 그 안의 장기와 혈관까지 파고들어 도시를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체로 바라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스스로의 모습을 사진 속에 담는 것에 대해서는 "버려진 공간 속 살아있는 생물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그런 위험한 곳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었다"면서 "누드는 문화적, 시간적 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콜롬비아대에서 불문학, 프랫인스티튜트에서 회화를 전공한 김씨는 2007년 뉴욕타임스에 작업 내용이 소개되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철학자 도올 김용옥의 딸인 그는 "내 작업에 대해 강연하는 동영상을 보신 아버지께서 '사상이 담겨있다'며 좋아하셨다"고 말했다. 전시는 9월 13일까지. (02)519-0800
김지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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