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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퍼즐' 욕망에 충실한 삶이 진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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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퍼즐' 욕망에 충실한 삶이 진짜일까

입력
2009.08.23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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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예 지음/민음사 발행ㆍ276쪽ㆍ1만1,000원

'나는 욕망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권지예(49)씨의 세번째 소설집 <퍼즐> 을 지배하는 여성들의 명제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녀들에게 욕망은 결코 채워질 수 없는 형벌이다. 그 형벌의 대가는 대개 죽음이다. 작품 속 여성들은 욕망에서 해방되기를 두려워하면서도 그것을 원하는 양가적 태도를 취한다. 수록작 '바람의 말'은 젊은 남자와 눈이 맞아 헌신적인 남편을 버리고 출분한 엄마와, 그런 엄마를 용서하지 못해 평생 여자로서의 삶을 포기하겠다고 맹세했던 딸의 히말라야 동행기다.

남자와의 행복한 삶을 상상하지 못했던 딸은 남편과 애정없는 결혼생활을 유지한다. 그런 그녀에게도 새 사랑이 다가왔지만 그가 결혼을 통보하자, 딸은 유서를 남긴 채 히말라야를 찾는다. 죄책감과 모멸감에 시달리는 그녀와 달리 엄마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다. 새 남편이 나이 어린 여인을 찾아가 버림을 받았지만 그녀는 딸 앞에서 "난 내 인생에 후회가 없어"라고 당당히 선언한다.

딸은 "나 여자를 포기하고 살고 싶었어. 그게 다 잘난 엄마가 영원한 사랑, 운명적인 사랑을 외치면서 남은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고 떠났기 때문"이라고 절규하지만, 엄마는 오히려 "너는 너 자신을 속이고 있는 거야. 잘난 척 하지 마"라고 대꾸한다. 죽기 위해 히말라야를 찾은 딸 앞에 던져진 질문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은 '가짜 삶'이고 욕망에 충실한 삶이 '진짜 삶'일까 하는 것. 그녀의 상처를 위로하는 것은 히말라야 여인의 말이다. "인생에서 일어난 일은 그저 이 인생에서 받아들이세요. 다행이에요. 무사히 돌아갈 수 있어서요."

불륜이 가부장제의 폭압성을 극복하고 여성이 주체성을 발견하는 소설적 장치로 쓰이는 것은 1990년대 은희경, 전경린, 서하진씨 등의 등장 이래 한국소설에 익숙한 문법이다. 혼외관계가 주요 모티프로 쓰인다는 점('BED', '네비야, 청산가자', '꽃진 자리'등 )에서 권씨의 이번 소설집 역시 '불륜서사'의 혐의를 받을 만하지만, 소설 속 여성들이 죽음까지 불사하고 욕망의 실현을 꿈꾸는 이유가 단순히 '에로스적 정념'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권씨 소설의 새로운 전망을 엿보게 한다.

예컨대 전처 소생의 딸이 있는 남자와 결혼한 표제작의 여성은 아들 하나만 낳으라는 시댁의 성화에 못 이겨 두 번이나 인공중절을 한 끝에 아들을 낳지만, 아들을 사산하자 가족에 대한 복수로 죽음을 택한다. 그녀에게 존재의 의미는 '모성'에 대한 욕망이었던 것. 권씨는 "무늬는 애정소설이지만 인간 내면의 욕망이 세계와 부딪히고 결국 파멸하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다"며 "그런 의미에서 소설 속 인물들은 존재의 흐릿함을 견디지 못하는 인간들"이라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사진 왕태석기자 king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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