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공간은 한국 소설에 활력을 부여하는 새 개척지인가?
최근 몇년간 주요 인터넷 서점과 포털 사이트들이 국내 유명 작가들의 소설을 연재하고, 이를 출판사들이 단행본으로 출간하는 시스템이 정착되면서 한국문학에 던져진 질문이다.
활자 텍스트에서 인터넷으로의 '글쓰기 공간'의 변화는 소설의 형식 변화를 유도할 것인가, 댓글이라는 인터넷의 특성이 독자가 작품에 개입할 여지를 넓힐 것인가, 하는 질문도 잇따른다.
■ 자리잡은 인터넷 소설 연재
이른바 순수소설의 인터넷 연재는 2007년 박범신씨가 네이버 블로그에 '촐라체'를 연재한 것이 시초다. 이 연재는 100만명의 방문자를 끌어들였고 이후 황석영씨도 장편소설 '개밥바라기별' 을 네이버 블로그에 연재한 뒤 단행본으로 펴냈다.
공지영씨의 '도가니', 박민규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공선옥씨의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등도 인터넷 연재 후 책으로 나왔다.
최근에는 '나비', '웹진 뿔' 등 문학 전용 인터넷 사이트도 속속 만들어지면서 작가들의 인터넷 연재는 확산일로다. 신경숙, 김훈, 구효서, 정도상, 김경욱, 김도언, 이기호, 오현종씨 등 인터넷에 소설을 연재한 후 단행본 출간을 기다리고 있거나 연재 중인 작가들은 10여명에 이른다.
■ 창작공간 확장 vs 출판사ㆍ특정 작가들의 잔치
인터넷 소설 공간의 등장은 일간지의 소설 연재가 크게 축소된 현실에서, 장편소설을 연재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잡아 문단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것이 작가들의 반응이다.
소설가 이기호씨는 "작품들이 매체의 특성을 살리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장기적으로 한국소설이 양적으로 풍성해질 것은 분명하다. 작가들의 창작의욕을 고무시켜줄 것임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학평론가 조영일씨는 계간 '문학수첩' 가을호에 발표한 '인터넷 문학은 어디에 존재하는가?'라는 글에서 현재 연재되는 인터넷 소설들이 이미 출판사와 출간계약이 된 유명 작가들의 작품 일색이라는 점을 거론하며 이 공간이 "추가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출판사의, 그리고 그 비용만큼 추가이익이 가능하다고 간주되는 작가들만의 잔치가 될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인터넷 연재소설의 경우 출판사가 포털 사이트(또는 인터넷 서점)와 연재료를 절반씩 부담하거나 출판사가 전액 부담하고 있다.
반면 문학평론가 김명석씨는 같은 잡지에 발표한 '더 리더, 인터넷에서 소설을 읽다'라는 글에서 "인터넷 소설이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작품성을 보장해줄 수 있는 프로 작가들의 참여를 유도하여 독자들이 보다 다양하고 수준높은 작품들을 풍요롭게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독자 입장에서는 무료로 책 발간 전에 소설을 접할 수 있고, 웹진을 운영하는 출판사나 서점 측에서는 책의 홍보를 통해서 경제적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윈윈 효과를 거둔다"고 평가했다.
■ 소설 형식 변화 가져올까
댓글이 활성화된 글쓰기 공간의 변화가 글쓰기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지도 관심거리다. 작가들로서는 여전히 연필로 글쓰기를 고집하며 댓글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반응(김훈)이 있는가 하면 "연재 내내 백주 대낮에 광장에서 글쓰는 과정이 중개되는 것 같아 힘들었다"는 반응(공지영)까지 다양했다.
댓글을 의식하지만 작품의 근간을 흔들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작가들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실제로 댓글의 80~90%가 작품 비평보다는 작품에 대한 칭찬이나 작가에 대한 격려로 나타나고 있다.
매체 변화가 소설 형식의 변화를 가져다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반응이 엇갈렸다. 현재 장편 '어디선가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를 연재 중인 신경숙씨는 "예전에는 인터넷 언어라는 것이 따로 있어 만일 연재를 한다면 기존에 지면에 발표한 작품보다 경쾌하거나 발랄하게 쓸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실제 해보니 그런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이제는 인터넷이 일상이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근 인터넷 소설 '거대한 속물들'의 연재를 시작한 오현종씨는 "구술로 전달되던 이야기가 기록되면서 형식을 갖췄듯 인터넷 소설은 작가들로 하여금 글쓰기 스타일의 변화를 추동할 것"이라며 "원고지 10매 안팎의 글을 네티즌들을 상대로 매일 연재하는 만큼 한 편 한 편이 완결성을 갖고 문장의 맛을 살릴 수 있도록 애를 쓴다"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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