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와 함께 분석한 '팬텀'의 정신세계, 무대에서 보여드리죠."
서울 약수동 연습실 근처 카페에서 18일 만난 배우 양준모(29)의 머릿속엔 온통 팬텀 뿐이었다. 팬텀을 읽고 보고 듣고, 심지어 정신과의사인 친한 형과 함께 의학적으로 분석까지 했다고 했다. 롤 모델인 호주 배우 앤서니 워로우가 공연하는 팬텀을 보기 위해 그곳으로 신혼여행을 갔고, 브로드웨이에서 오리지널 공연도 관람했다.
팬텀은 가스통 르루의 소설 <오페라의 유령> 에 등장하는 주인공으로, 천재음악가지만 한쪽 얼굴이 일그러진 탓에 콤플렉스로 꽉 찬 캐릭터다. 양준모는 9월 개막하는 동명 뮤지컬에서 국내 두번째 팬텀 역으로 지난 5월 발탁됐다. 오페라의>
'오페라의 유령'은 전 세계 25개국 124개 도시에 공연돼 누적 관람객이 1억여명에 이르는 작품이다. 1986년 런던 초연 이후 웨스트엔드 23년, 브로드웨이 21년 등 최장기 공연 기록을 잇고 있다.
국내에서는 2001년 초연 당시 7개월 동안 24만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2005년에는 현재까지 약 2,300회 팬텀 역을 해온 브래드 리틀의 내한 공연이 전회 전석 매진되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렇게 기록을 몰고 다니는 통에 8년 만에 국내 팀이 공연할 '오페라의 유령'의 팬텀 역은 기획 때부터 초미의 관심사였다. 오디션 지원자만 1,000여명.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무려 6개월에 걸친 선발 끝에 뚜껑이 열리자 뮤지컬 마니아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대중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양준모'라는 이름 석 자에 대한 반응이었다.
2004년 데뷔한 양준모는 뮤지컬 10개 작품과 연극, 오페라까지 경험한 결코 가볍지 않은 배우였다. 하지만 알려진 대극장 작품은 '스위니 토드'(2007) 뿐이었다. 평양, 일본 등지를 다니느라 정작 서울 무대에는 2007년에야 처음 서는 바람에 신인으로 착각하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스위니 토드'로 얼굴을 알린 뒤 그는 또 대극장에서 모습을 감췄다.
공연이 없는 월요일을 빼면 지난해 내내 뮤지컬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 '씨왓아이워너씨' 등에 매달렸지만 소극장 공연이었던 탓에 대중의 관심을 끌진 못했다.
대규모 공연에 욕심을 부릴 법한데도, 양준모의 선택은 달랐다. 작품의 인지도나 규모는 고려하지 않았다. '더 배울 수 있을까, 내 다른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만 생각했다. 춤과 코미디를 배우기 위해 '이블 데드'를, 정통 연기가 탐나 정극 '씨왓아이워너씨'를, 노래만으로도 감정을 능숙하게 표현하기 위해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에 도전했다.
이 세 작품은 그에 의해 무려 300회 공연됐고 마니아 사이에서는 입소문이 퍼졌다. 그는 "코 앞에서 관객을 맞닥뜨리는 소극장에서는 깊이있고 섬세한 연기가 필요했다"면서 "특별한 연기 수업을 받지 못한 나에게 무대는 큰 선생님이었다"고 말했다.
연기 공부가 적었던 대신 양준모에게는 황홀한 노래 실력이 있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한 그는 학생 때 오페라 '마술피리'에 데뷔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미국 유학을 준비하던 그는 2004년 가극 '금강'에 출연할 기회를 얻는다.
'금강'은 시인 신동엽의 동명 서사시에 음악과 드라마를 가미한 작품으로, 6ㆍ15 남북공동선언 5주년을 기념해 평양 무대에 올랐다. "그들의 뜨거운 반응을 보고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뮤지컬로 진로를 바꿨어요. 점잖은 오페라에선 보기 힘든 광경이었거든요."
그러나 양준모의 성악 실력은 뮤지컬에서 바로 빛을 발하진 못했다. 처음 오디션을 봤을 때, 록뮤지컬 곡을 성악처럼 불러 '괴짜' 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오페라와 뮤지컬은 달랐다.
혼자 발성을 익히며 무대에 선 지 5년, 바리톤이었던 그는 어쩌면 필연적으로 맡아야 했을 팬텀 역을 따냈다. 팬텀은 하이 바리톤 음색에 2옥타브를 넘나들며, 아주 저음부터 분노를 표출하는 파워풀한 곡까지 소화할 수 있어야 하는 역할이다.
요즘 양준모는 아침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식사 외에는 노래만 부른다. 수더분한 얼굴에 팬텀의 망토를 걸친 채로. "기존의 팬텀은 잊고, 새 작품을 본다고 생각하세요. 아주 인간적인 팬텀을 만나게 될 겁니다." 욕심 많고 열정 넘치는 팬텀이 샤롯데씨어터로 초대한다. 9월 23일부터 내년 8월 8일까지. (02)501-7888
김혜경 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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