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평생 추구해온 화해와 용서의 정신, 평화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이희호 여사가 23일 인생의 반려자이자 동지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눈물로 떠나 보내면서 전한 남편의 유지다. 어쩌면 그토록 사랑하고 존경했던 남편의 빈 자리를 스스로 메워가겠다는 다짐일 지도 모르겠다.
엿새간의 국장 기간 내내 눈물이 마르지 않았지만, 서울광장에서 '행동하는 양심'을 강조하던 순간만큼은 울먹임도 없었고 목소리도 단호했다.
1950년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한 뒤, 당시로서는 드물게 미국 유학까지 한 엘리트 여성운동가였던 이 여사는 1962년 주변의 반대를 뿌리치고 정치 신인에 불과했던 김 전 대통령과 결혼했다. 1951년 지인의 소개로 김 전 대통령과 몇 차례 대면한 뒤 10년 만에 '운명적으로' 재회한 이듬해였다.
이후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이 옥고를 치를 때는 옥바라지로, 미국 망명 때는 후견인으로, 가택연금 때는 동지로, 야당 총재 시절에는 조언자로 매 순간 정치 역정을 함께 했다. 특히 남편이 수감 중일 때는 매일같이 용기와 사랑을 담은 편지를 보내 심신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불어 넣었다.
20일 입관식 때 이 여사는 자신의 자서전 표지에 애절한 사부곡을 담았다.
"너무 쓰리고 아픈 고난의 생을 잘도 참고 견딘 당신을 참으로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 그가 남편에게 전한 마지막 글귀다.
김 전 대통령도 저서 '내가 사랑한 여성'에서 "내가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바로 아내와의 헤어짐이 너무도 아쉽고 슬프기 때문일 것"이라는 말로 무한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 바 있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존경했던 반쪽은 이제 빈 자리로 남았다. 87세의 연로한 몸으로 매일같이 눈물로 기도하며 병상을 지켰지만 기적은 없었다. 이 여사는 서울현충원 안장식에서 남편에게 헌화를 하고 분향을 한 뒤 고개를 90도 숙이는 것으로 작별인사를 대신했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과의 결혼을 결심한 뒤 지인에게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저 분은 지금 고생하고 있지만 큰 인물이 될 사람이다. 반드시 훌륭한 정치인이 되도록 하는 게 내 사명이다. 어떤 고난이라도 감수할 각오가 돼 있다."
양정대 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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