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을 모르고 추락할 것 같던 경기가 회복조짐을 보이면서 산업계 곳곳에서 가격 인상을 놓고 마찰을 빚고 있다. 인상하려는 쪽은 그간 떨어졌던 제품값을 '정상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구매자 입장에서는 경기침체가 여전해 가격인상은 시기상조라고 맞서고 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가격인상 문제에 포문을 연 곳은 무역업계. 무역협회는 북미와 유럽을 운항하는 해운업체들이 경기회복을 이유로 화물운임을 최근 대폭 인상하려 한다며 기업 수출경쟁력 약화에 우려를 표명했다. 세계 최대 해운업체인 머스크와 국내 양대 해운업체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등이 일방적으로 운임을 최대 100%나 올리려고 하고 있어 대외 의존도가 높은 국내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해운업계의 입장은 반대다. 그간 경기침체로 폭락했던 운임을 일부 정상화하려는 것 뿐이며, 이를 수출 경쟁력 약화로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라는 반응이다. 선주협회 관계자는 "한때 4,400달러(40피트 컨테이너 기준)였던 아시아~유럽 노선 운임이 현재 1,000달러까지 폭락한 상태여서 이를 일부 정상화하는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현 운임으로는 선박가격과 금융비용을 감안할 때 적자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만큼, 운임 정상화가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해운업계는 한국~로스앤젤레스 운임을 1,084달러에서 1,984달러로 83%, 한국~로테르담은 1,200달러에서 2,400달러로 100%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철근값 인상을 놓고도 갑론을박이다. 국내 철근의 40%를 공급하는 현대제철을 비롯해 동국제강, 한국철강 등은 이달부터 비수기 할인폭을 줄이는 방식으로 철근값을 인상한다는 방침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고철값 상승과 경기회복 등을 고려해 가격을 인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철강업계는 현재 톤당 69만1,000원인 철근을 73만1,000원으로, 4만원 인상할 예정이다.
건설업계는 이를 철강사의 이기주의로 보고 있다. 고철값이 올랐지만, 환율이 내려 실제적으로 원가 인상 요인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건설업계 자재구매 모임인 건설사자재직협의회 관계자는 "철강회사들은 그간 고철값이 하락했을 때는 가격을 제대로 내리지 않더니, 이제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점만 부각시키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협의회는 오히려 건설 비수기와 환율하락 요인으로 고려하면 철근값을 오히려 4만원 정도 내려야 한다는 판단이다. 이에 따라 협의회는 이날 회의를 열어 철강 공동 구매 및 수입물량 증가 등의 대응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형 철강업체들이 가격 결정에 주도권을 쥐고 있어 속 시원한 대책이 없다는 게 건설업계의 고민이다.
설탕값 인상도 마찬가지. 시장점유율 1위인 CJ제일제당이 원당(설탕원료)의 국제시세 인상을 이유로 17일부터 설탕 값을 평균 8.9% 올리면서 제과ㆍ제빵 업체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올해 원당 국제시세가 80% 이상 급등하면서 28년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며 "경기침체에 따른 고통분담 차원에서 유보했던 설탕값을 최소한도로 올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장 원료값 인상을 맞은 제과ㆍ제빵업계는 가격인상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한 제빵업체 관계자는 "국제 현물시세가 국내 유통 제품의 가격에 반영되는 데 시차가 있는데, 너무 빨리 설탕값을 올리는 것 같다"며 "그렇다고 빵값을 곧바로 올릴 수도 없어 고민"이라고 말했다.
박기수기자 blessyou@hk.co.kr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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