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안거 석 달 하고 해제비가 750만원이라니요. 노동자 최저임금이 얼만데. 제가 기거하는 마을의 새벽 인력시장 하루 일당이 남자 7만원, 여자 3만5,000원이에요."
한국 불교 전반의 문제점을 진단하자는 취지로 14~18일 전북 남원 실상사에서 열린 '지리산 야단법석'. 행사 폐막을 하루 앞둔 17일 기자간담회에서 전북 익산 사자암의 향봉 스님은 작심한 듯 선방의 병폐를 까발렸다.
"지난해 경상도 모 사찰에서 안거 해제비로 스님들에게 700만원씩을 줬다고 알려졌는데, 경쟁이라도 하듯 올해 충청도 한 사찰에서 750만원씩 지급했다고 합니다. 뭉칫돈을 쥔 스님들이 흥청망청 돈을 쓰고 해외여행을 다니기도 한답니다. 정신수양을 하는 도량에서 있을 법한 일입니까?"
향봉 스님은 "나도 1966~73년 해인 선방에 기거했는데 당시엔 해제비라는 것 자체가 없었다. 세상이 바뀌었고 만행 떠나는 스님들 여비도 필요할 테니 해제비 자체를 반대할 마음은 없지만, 현실은 도를 넘고 있다"며 "하지만 전국 대다수 선원들은 10만~30만원 정도의 해제비를 지급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향봉 스님은 '10안거 이상' '20안거 이상'하는 식으로 안거 관록을 따져 고참ㆍ신참을 나누고 감투를 주고받는 일부 선방의 관행에 대해서도 질타했다. "오래 참선했어도 깨닫지 못했다면 부끄러워해도 시원찮을 판에 그 무슨 세속의 계급장 따먹기냐"며 혀를 찼다.
또 큰 스님의 법어를 시자 등 젊은 스님이 대신 써주는 일도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법문이란 먼저 깨친 이가 대중을 일깨우기 위해 내리는 말씀인 바, 조실이 연로하거나 병환 중일 때라도 최소한 구술로 시자에게 받아 적게 하는 것이 도리"라고 꼬집었다.
그는 또 5대 총림의 인적 폐쇄성을 거론하며 "자기 사찰 출신이 아니면 강주나 조실, 방장이 절대 될 수 없는 작금의 풍토는 불교계의 폐쇄성과 후진성을 보여준다"며 "총림이란 말 그대로 종합 수도도량이어야 하며, 열려 있는 도량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야단법석은 '민족성지 지리산을 위한 불교연대' 준비위원회가 1994년 조계종 개혁불사 이후 한국 불교의 문제점을 스스로 드러내 진단하고 해법을 담론화하는 작업이 부재했다는 반성에 근거해 마련한 자리였다.
불교가 사찰의 울타리를 넘고 참선의 풍토를 개선해 생태ㆍ교육 등 사회적 역할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기 위한 길을 모색하자는 취지.
선과 교를 겸수한 조계종 최고의 강백으로 통하는 무비 스님은 "조계종의 소의 경전(중심 경전)인 금강경은 참선의 의미가 강한 반면 사회참여나 봉사의 보살행에 대한 가르침이 다른 대승 경전에 비해 부족하다"며 이 점을 교단 차원에서 신중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도법 스님은 선방 교육의 부실화 문제를 제기하며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에서는 교육을 최우선으로 할 것이라는 공약을 선방들이 앞장서서 이끌어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행사의 실무를 주관한 실상사 화엄학림 학장 법인 스님은 "전국 100여 개 선원에서 2,000여 명이 참선 정진하고 있는데 이 같은 은거ㆍ좌선 문화의 경직성과 은둔성을 탈피하기 위한 첫 시도로 올 겨울에는 '움직이는 선원' 행사를 가질 계획"이라고 밝혔다.
움직이는 선원은 지리산 800리 길을 함께 돌며 경전과 어록을 읽고 토론함으로써 체험과 참선을 함께 이루자는 시도이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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