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회사원인 김모(여·서울 성북구)씨는 36개월된 아이가 고열과 인후통 등 신종플루 증세를 보여 병원을 찾았다가 기진맥진하고 말았다. 보건소에서 타미플루 처방과 함께 검사를 받았지만 확진판정이 나올 때까지 열흘 이상 걸리고 병원은 그동안 알아서 격리 하라고 할 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김씨는 20분만에 검사결과가 나오는 간이 검사를 요청했으나 오히려 병원 측은 간이 검사결과가 정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확진결과를 기다려보라고 해 회사출근도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신종인플루엔자(신종플루)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지만, 타미플루 투약 기준과 감염여부 검사 등을 둘러 싸고 일선 의료진과 환자들 사이에서 혼선이 가속화하는 등 보건당국의 신종플루 대책이 곳곳에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20일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전날 108명의 확진 환자가 발생한 데 이어 이날에도 97명이 확진 판정을 받아 전체 감염자 수가 2,417명으로 늘어났다. 전북 전주 A여고에서는 이날 7명의 학생이 신종플루에 걸려 임시휴교에 들어갔고, 인천의 한 어린이 집도 지금까지 7명의 환자가 발생해 휴원에 들어갔다. 경북 D대학은 신종플루 확산을 우려해 이 달 24일로 예정됐던 개강일을 일주일 연기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질병관리본부는 이날 타미플루 투약 기준을 대폭 완화, 신종플루 검사를 하기 전이라도 의사 판단에 따라 타미플루를 투약하도록 하는 '항바이러스제 투약대상 및 절차 방안'을 발표했다. 방안에 따르면 ▦합병증 발생 우려가 높은 59개월 이하, 임산부, 노인, 만성질환자 등 고위험군 ▦고위험군이 아니라도 의사 판단에 폐렴 소견을 보이는 경우, 신종플루 검사를 받기 전이라도 타미플루 투약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종구 질병관리본부장은 "일일이 검사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의사가 적극적으로 타미플루를 투약할 수 있도록 재량권을 강화했다"고 말했다.
이 지침대로라면 고위험군 등을 제외한 대부분 환자에 대한 투약 여부는 전적으로 의사 판단에 맡겨진다. 한 감염내과 교수는 "약 처방을 요구하는 환자와 의사간 마찰이 커질 것"이라며 "의사들이 책임 회피를 위해 남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보건당국이 투약기준에 대해 사실상 의사들에게 위임해버리면서 혼선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얘기다.
보건당국은 특히 21일부터 전국 455개 신종플루 거점치료병원과 522개 거점약국을 통해 환자들이 타미플루를 투약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들 병원과 약국에 대한 타미플루 배포가 지연되고 있어 실제 작동은 다음 주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신종플루 감염여부에 대한 검사절차 등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당국은 이날 확진 검사는 폐렴 등 중증 입원환자를 중심으로 의사가 필요한 경우만 하도록 제한했다. 그러나 당국은 며칠 전만해도 검사기관과 일선 병원을 연계해 일선 동네병원에서도 검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당국이 "검사보다는 약으로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가족 등에 대한 전파를 우려해 검사를 요구하고 있는 대부분 환자들은 혼란이 불가피하게 됐다.
한편 보건복지가족부는 이날 당정협의에서 "올 10~11월 신종플루 유행이 정점에 달할 것"이라며 현재 인구의 11% 분량인 타미플루 등 항바이러스제 비축량을 최대 두 배 수준으로 늘리기로 했다.
대구=정광진기자 kjcheong@hk.co.kr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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