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소식에 감회가 남다른 일본인이 있다. 마쓰다 미쓰구(町田貢ㆍ74) 전 주한 일본대사관 공사다. 1973년 납치사건 직후부터 김 전 대통령을 수십 차례 면담하며 사반세기 걸쳐 그의 고난과 영욕을 지켜본 외국인이다.
19일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에 따르면 마쓰다 전 공사가 김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난 것은 1973년 10월 말. 서울 부임 직후 '납치사건' 처리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김 전 대통령을 자택에서 면회한 게 시작이었다. 도청 등 당국의 감시가 심해진 70년대 중반부터는 필담을 섞어가며 나눈 대화가 약 60차례다.
당시 마쓰다 공사가 오후 6시께 방문해 저녁 대접을 받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탁자 위에는 늘 A4지를 네 등분한 메모지가 놓여 있었다. "박정희는 나를 어떻게 처리하려는가" "한미 관계는 어떤 상황인가" "일본은 반체제 세력을 더 지원해야 한다" 화제가 시국으로 가면 김 전 대통령은 필담으로 이렇게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밤늦게까지 이어지곤 했던 면담에서 매번 사용한 메모지는 100장 이상이었고, 김 전 대통령은 사용한 메모지를 2, 3장씩 모아 성냥불로 태워 버렸다. 마쓰다 전 공사는 김 전 대통령을 민주화 열정이 넘치면서도 고통을 함께한 동료도 냉철하게 자르는 현실주의자로 기억했다.
도쿄=김범수 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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