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에게 우리은행장 시절 파생상품 투자로 손실을 끼쳤다는 이유로 직무정지 등 중징계 방침을 통보했다고 한다. 금융 본연의 역할과 위기 관리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취지일 것이다. 하지만 CEO가 경영적 판단에 따라 다양한 변수를 감안해 내린 결정의 결과가 나쁘다고 해서 처벌카드부터 꺼내 드는 것이 온당한지는 의문이다. 결국 무죄로 결론 난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이 '변양호 신드롬' 등으로 공직사회에 끼친 악영향에 비춰 더 사려 깊게 사안을 살피는 게 옳다.
황 회장은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으로 공격적 경영을 주도하면서 부채담보부증권(CDO)과 신용부도스와프(CDS) 등 금융 파생상품에 15억8,000만달러를 투자했다. 그런데 그의 퇴임 이후 뉴욕 발 금융위기로 이 상품의 가격이 폭락하는 바람에 우리은행은 투자액의 90%인 1조6,200억원을 손실처리했다. 황 회장이 잘못된 판단과 부적절한 투자로 큰 손실을 끼쳤으니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금감원의 입장이다.
그러나 금감원은 금융위기 엄습 전인 2007년 우리은행을 종합 감사할 때 파생상품 투자를 문제삼지 않았다. 파생상품 투자가 경영적 결단에 의한 것임을 인정했다는 뜻이다. 지금 와서 굳이 책임을 따지자면 금감원도 피해갈 수 없다. 뒤늦은 책임논란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복잡한 의사결정과정은 도외시한 채 결과만 따짐으로써 '잘되면 내 덕, 못되면 네 탓'이라는 냉소주의가 확산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공기업이든 사기업이든 CEO가 경영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규정을 어겼다면 문책해야 한다. 하지만 당사자의 운신과 자격을 제한하는 중징계를 내리려면 보다 엄밀하고 합리적인 잣대가 필요하다. 황 회장의 경우 이런 시비의 중심에 있다. 금감원이나 예금보험공사는 책임의 정도와 징계의 전후 파장을 잘 따져 현명한 결정을 하기 바란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