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로 가는 하늘길은 그리 쉽게 열리지 않았다.
19일 오후 4시 52분 4초. 우주강국을 향한 꿈을 싣고 솟구쳐 오르려던 나로호가 카운트다운 7분56초를 남겨두고 발사를 멈추는 순간, 한반도 남녘 끄트머리 땅은 장탄식이 터져 나왔다. 이날 나로호 발사 성공을 기원하며 '우주도시' 고흥반도를 찾았던 수만 명의 관람객들은 설마 했던 나로호 발사 연기가 현실로 나타나자 황당함과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오전부터 나로우주센터를 비롯한 고흥의 하늘은 연무가 낀 것처럼 흐렸고, 발사 1시간여 전까지도 갤 기미가 보이지 않자 여기저기서 "이번에도 발사가 미뤄지는 것 아니냐"는 말들이 나돌았다.
나로우주센터 발사대에서 15㎞ 떨어진 영남면 남열해수욕장에서 나로호 발사장면을 지켜본 조홍제(51ㆍ서울 마포구)씨는 "나로호가 예정대로 발사돼 우리나라 우주과학 탐색의 첫 장을 열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왔는데 안타깝다"며 "나로우주센터를 바라보며 느꼈던 가슴 벅찬 흥분이 아직 가라앉지 않고 있는데 이게 무슨 일이냐"고 말했다. 윤순남(74ㆍ여ㆍ광주 광산구)씨는 "내가 죽기 전에 이런 국가적인 경사를 또 볼 수 있겠냐 싶어서 큰 마음 먹고 먼 걸음을 했는데 결국 헛걸음을 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나로호의 7번째 발사 연기라는 불길한 예감이 현실로 나타나자 우리나라 과학기술력에 대한 자괴감과 울분도 쏟아져 나왔다. 전남 여수에서 아들과 함께 발사장면을 지켜보기 위해 고흥을 찾은 김승진(43)씨는 "러시아 기술에 좌지우지 되더니 결국 또 연기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라는 국민적 슬픔 속에서도 나라호 발사를 강행한 정부에 대한 비난도 나왔다. 윤경순(73ㆍ광주광역시)씨는 "국상(國喪) 중인 상황에서는 경축행사를 자제하는 것이 옳았다"며 "결과론적이지만 나로호 발사도 못하고 상중에 성공기원을 이유로 흥겨운 노래만 불렀으니 참 꼴이 우습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로호 발사 연기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쉬움은 발사성공을 위한 성장통으로 여기자는 목소리도 컸다. 여수시 화정면 개도 앞바다에서 156톤급 유람선 '한마음호'를 타고 발사 장면을 지켜보던 안국빈(24ㆍ경상대 항공우주학과 3년)씨는 "우주개발은 실패와 도전의 역사"라며 "이번 실패의 쓴 경험과 교훈을 밑거름 삼아 재도전에 나선다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범(32ㆍ서울 성수동)씨는 "또 다시 나로호 발사가 연기된 것은 너무나 안타깝지만 나로호가 우주강국을 향한 꿈은 더욱 키우고 국민들에게 긍지와 자부심을 주게 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나로호 발사가 연기된 지 1시간 만에 브리핑실에 들어선 이상목 교육과학기술부 과학기술정책실장, 이주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 박정주 항우연 발사체체계사업단장 등 관계자들은 시종 굳은 표정이었다. 이 실장은 "나로호 발사가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한 것에 대해 많은 성원을 보내 주신 국민들께 송구하다"며 "첫 발사에서 발생한 상황이어서 관계자들도 어리둥절했고, 경위 파악에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고흥=안경호 기자 khan@hk.co.kr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