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무너지는 슬픔, 땅이 꺼지는 아픔을 감당할 길이 없습니다. 마음의 등대처럼 의지해온 당신이 갑자기 떠나시니 비통하고 주체하기 어려운 슬픔이 밀려옵니다. 이렇게 당신을 속절없이 보내드려야만 하는 제 처지가 참으로 원망스럽습니다.
흔들리고 감당하기 어려운 외로움이 밀려오면 어둠 속에서 촛불을 찾듯 늘 당신을 찾았습니다. 그때마다 당신은 혜안과 지혜를 알려주셨습니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살아오신 고난과 인내의 삶을 보고 배우며 어려움 앞에서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다섯 번 죽음의 문턱을 넘은 당신 삶처럼, 이번에도 훌훌 털고 다시 우리 곁으로 오실 줄로 알았습니다. 끝내 다시 일어나지 못하셨단 소식에 눈이 시리고 아득하기만 합니다. 언젠가는 보내드려야 하겠지만 제 자신이 아쉬움과 송구함을 주체하지 못하는 걸 보니 결코 지금은 헤어질 때가 아닌 것 같아 더욱 서럽기만 합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1997년 12월 18일. 그때 저는 연청회장이었습니다. 50년만의 정권교체에 기여할 수 있는 것 자체가 행복했고 신명났습니다.
기조위원장으로 당신께 보고하면서 정당정치에 대한 원칙을 배웠고 노사정 간사위원으로서 노동자와 인권에 대한 당신의 철학을 배웠습니다. 국민의 정부시절 직접 저를 불러 당부하신 기초생활보장법 입법은 당신의 복지에 대한 신념의 결과물입니다. 민주개혁진영에서 사람과 정치, 정책 그 어느 곳에 당신의 혜안이 미치지 않은 곳이 있겠습니까.
지난 7월11일이었습니다. 최고위원단과 함께 서울 동교동 자택을 찾았을 때 늘 그러하듯이 형형한 눈빛으로 중국을 다녀오신 소감을 소상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남북관계, 국제정세에 대한 큰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걱정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역사에서 독재자가 승리한 적이 없다"고 하시던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한데, 그것이 생전의 마지막 대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당신은 국민 모두에게 영원한 대통령, 존경하는 대통령님입니다.
온 국민이 IMF 환란 앞에서 절망의 나락에 빠져있을 때 "희망의 저쪽을 향해, 위기의 강을 건너는 다리가 되겠다"며 나라와 국민을 구하셨습니다. 당신의 이름 석자를 보고 외국 정상들이 앞다퉈 한국에 지원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산업화는 뒤졌지만 정보화는 앞서야 한다"며 인터넷 강국을 만들었습니다. 국민 누구도 굶길 수 없다며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도입했고 양성평등을 통해 여성 권익을 신장시켰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님!
많은 사람들이 당신과의 불가피한 별리를 이야기할 때, 저는 간절하게 기도를 올린 적이 있습니다. "대통령님 제발 조금 더 오래 저희 곁에 계셔주십시오. 저희가 조금 더 잘해서,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국민이 희망을 말하고, 그 중심에 저희들이 있을 때 가십시오."
평안하게 보내드리고 싶었습니다. 미련과 회한 없이 훌훌 털고 가실 수 있도록 해드리고 싶었지만 결국 헛된 희망으로 남고 말았습니다. 당신의 영전에서 더 처연해지는 심정을 가눌 길 없습니다.
이제 대통령님과 이별할 때입니다. 지난 2005년 어렵던 시절 열린우리당 당 의장을 맡아 당신을 찾았을 때 대통령님은 저희들에게 "당신들이 나의 후계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모든 것을 바쳐 감히 당신을 잇겠다고 말하겠습니다.
당신은 떠나셨지만, 온 국민의 가슴속에 영원히 함께 하실 것입니다. 세계인은 당신의 세계평화에 대한 기여와 한국정치에 대한 헌신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부디 편히 쉬십시오.
마음을 모아 대통령님의 명복을 빕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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